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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관철 위해 과격 행동 불사… 제2, 제3의 김기종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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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관철 위해 과격 행동 불사… 제2, 제3의 김기종 곳곳에

입력
2015.03.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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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선악 구도로만 재단, 소통커녕 죽고살기 식 헐뜯기

젊은 극우주의 대명사 '일베' 등 보혁·세대 없이 우리 사회에 만연

5일 발생한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55)씨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는 극단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파가 크다. 그는 주장 관철을 위해 죽기 살기로 상대를 헐뜯고 끝내는 극단적 선택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의 테러는 개인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 원칙을 내세워 비타협을 고수하고, 공존의 가치를 무시하는 제2, 제3의 김기종이 우리 사회에 이미 퍼져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국가폭력 아래 억눌려 있던 시민의 목소리는 민주화를 거치며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들불처럼 표출되기 시작했다. 민주화 세례를 받은 이들은 2000년대 시민단체의 태동을 이끌었고, 국가 권력에 대한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 자리잡으며 공동체와 소통의 문화를 정착시킨 구심점이 됐다.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오후 재건총회를 열기로 했던 서울 중구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장소 대관을 불허한 수련관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오후 재건총회를 열기로 했던 서울 중구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장소 대관을 불허한 수련관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소통은커녕 마치 운동권 세대가 독재에 맞서 싸우듯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 재단하며 폭력으로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런 극단의 선택에는 좌우가 따로 없다. 지난해 7월 보수단체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차려진 세월호 참사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며 집기를 부수었다. 유족들의 아픔을 먼저 이해하기보다 “국가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이유였다. 2011년 11월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대하며 최루 분말을 투척했다. 소속 정당의 의견과 다르다며 80년대 투쟁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한 것이다.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일 “민주화가 급격히 찾아와 차근차근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개인ㆍ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됐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논쟁 대신 권위주의 정부 때부터 내려 온 구태의연한 이념의 촉수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앞두고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앞두고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세대의 구분도 없다. 과거 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극우적 행태는 이제 오히려 10~20대 등 젊은층이 주도하고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로 대표되는 청년 극우는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에 숨어 타인의 인격을 스스럼없이 깎아 내린다. 인터넷 등 통신망 발달로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세력화하기 수월해진 탓이다. 지난해 12월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토크 콘서트에서 ‘황산 테러’를 자행한 고교생의 사례는 온라인 폭력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대표적 경우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욕구가 비슷한 사람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일베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활개칠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변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정부ㆍ정치권의 무능은 양극화나 사회 안전망의 붕괴 등으로 인한 구조적 갈등을 극단주의로 둔갑시킨 또 다른 원인이다. 지난해 1월 한 40대 남성이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퇴진, 특검 실시”라고 쓰인 펼침막을 내건 채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분신했다. 그는 유서에서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이라며 팍팍한 사회현실을 죽음으로 고발했다. 이재교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삶의 기대수준은 높아졌지만 현실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이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이번 미국대사 테러는 주류에서 고립된 개인이 선택한 최악의 몸부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황인상 P&C 정치컨설팅 대표는 “소수의 생각이 주류 사회에서 도태되면 입장 관철을 위해 극단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미 사상은 김씨의 진짜 테러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페미니즘을 혐오한다”며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 국경을 넘어간 10대도 중학교를 중퇴한 은둔형 외톨이였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에 익숙한 중간층의 확산이 극단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지목된다. 이재근 참여연대 정책기획팀장은 “소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심해져 국가도 침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룩했지만 민주주의를 내면화하는 교육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나 공존을 가르치는 시민 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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