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완간 400돌 맞아 인식 변화 괴짜 폄하하다 변혁 주도 재평가
미친 시골 하류 귀족의 엉뚱한 모험담으로 알고 있는 소설 돈키호테가 올해 완간 400년을 맞았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1605년과 1615년 각각 1, 2편을 출간한 이 작품에 대한 서구 시선은 우리와 차이가 있다.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노벨 연구소), “세르반테스와 데카르트는 근대의 공동 부모”(소설가 밀란 쿤데라), “인류의 바이블”(프랑스 비평가 생트 뵈브). 돈키호테의 이상과 저돌성은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한국으로 넘어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돈키호테는 괴짜나 사회부적응자, 이상한 발상에나 붙는 수식어다. 엉뚱함 이면의 비상함은 보지 않는다. 이질성에 배타적인 우리 문화가 원인이다. 조직에 잘 흡수된 햄릿형 인간상이 사회 표준이며 돈키호테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평범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틀에 박힌 아이디어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돈키호테형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튀는 개성을 북돋아주는 사내 분위기도 의도적으로 조성한다. 스펙의 겉포장에 무게를 두지 않는 대기업들이 생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을 구원해준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처럼 우리도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의 진가를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창의력이 필수인 정보기술(IT)분야를 중심으로 변화는 뚜렷하다. 한국판 구글과 애플 식의 기업 문화가 시도되고 있다. 스마트TV 앱 개발회사 핸드스튜디오가 예다. 이 회사는 ‘구성원 개개인 꿈의 합’이라고 자청할 만큼 창의적 인재에 매달린다. 사용자인 영아의 움직임을 게임 캐릭터로 재현하는 교육용 스마트TV 앱‘로이포이(RoyFoy)’개발 과정만 봐도 그렇다. 스토리텔링을 구현하는 데 직원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관건이다. 한 예로 숲 속의 요정이 거품을 통나무에 불어넣으면, 통나무가 생기를 얻어 부풀고, 거품은 과일이 돼 통나무를 빠져 나오는 식이다. 이 회사는 성장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입사면접 시 꿈을 물어본다.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도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방편이다. 김동훈 대표는 “전문성과 창의력을 지닌 돈키호테형 인재를 뽑아 자유롭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주면, 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회사를 성장시킨다”고 했다. 서울 북촌마을에서 관광사업인 인력거를 운영하는 이인재(30)씨는 30명의 직원들이 상하, 나이 구분 없이 서로 반말을 쓰도록 했다. 직원들도 자기를 영어 첫 글자를 딴 ‘IJ’라고 부른다. 이씨는 “호칭 하나에도 많은 뜻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창의력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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