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냐, 일이냐" 어떤 선택이든 대한민국 엄마는 불행하다
아이 맡길 곳 없어 '동동' 워킹맘 "나라가 할 일 여성에 떠넘기나"
전업주부 됐지만 우울한 경단녀로, 여성 대학진학률 74% 무의미
직장인 이지현(39)씨는 둘째 아이 육아휴직 종료를 두 달 앞두고 복직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입사 시험 수석으로 들어가 10년 넘게 근무한 회사에, 관련 업무 석사학위까지 갖고 있는 이씨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 사내에서 A급 인재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두 차례 육아휴직을 하면서 경력관리는 엉망이 됐다. 명문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남편은 동종업계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육아는 오롯이 이씨의 몫이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기르는 것도, 교육시키는 것도, 하다 못해 유치원 입학식 참석과 학부모 상담도 모두 엄마가 할 일이었다. 두 번째 육아휴직은 남편이 해 주길 바랐지만,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회사에서 찍히는 분위기”라며 “승진 포기자로 변방 부서를 떠돌다 명예퇴직 하길 바라냐”고 이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씨는 “어떻게 해도 해소되지 않는 억울함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이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결국 사표를 내야 하나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진학률 여성이 높지만 경단녀 신세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돌아본 여성의 노동 현실과 육아 분담은 참혹할 정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2013 한국 성(性)격차지수’는 142개국 중 117위였다. 2012년 111위에서 더 떨어지면서 꼴찌 수준으로 전락했다. 성격차지수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교육성취, 정치참여 등을 고려해 매겨진다. ‘세계 성평등 보고서’의 세부 항목 순위를 보면 한국 여성은 특히 경제 활동ㆍ참여 부문에서 142개국 중 124위로 최하위권이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74.5%로 남학생(67.4%)보다 높았지만,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보다 23%포인트나 낮았다. 특히 고용률의 경우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겪는 20~30대에 급격히 떨어졌다. 30대 초반을 지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른바 ‘경력단절여성’이 대거 발생하기 때문이다. 25~29세 여성의 고용률은 67.8%였으나, 30~34세는 53.3%, 35~39세는 54.1%였다. 반면 남성 고용률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상승한다. 남성 고용률은 25~29세에서 71.6%, 30~34세 87.9%, 35~39세 91.6%로, 20대에선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 격차가 크지 않지만 30대부터는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다.
이씨가 안고 있는 고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여성 대부분이 겪고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기혼 여성 5명 중 1명은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것으로 집계돼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 양성 불평등 심화와 그에 따른 여성의 열패감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씨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남성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현실에 분노하며 나는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보니 육아라는 짐은 엄마 혼자 짊어져야 하더라”며 “여성의 과중한 육아 부담을 해결하지 못하고 불평등 구조가 악순환 되는 한 미래세대의 양성평등도 요원하다”고 한탄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최정은 연구원은 “여성의 경제참여를 뒷받침할 제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ㆍ사회 분위기가 형성 돼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성은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며 “탁아시설 확충과 아이 돌보미 서비스 강화, 남성 육아휴직 보편화 등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도 비정규직뿐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일이냐 육아냐’의 선택에서 육아의 길을 선택한 여성들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한번 경단녀는 영원한 경단녀’로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성 취업률이 20대에는 높은 편이지만 출산ㆍ육아기인 30대에 뚝 떨어진 후 육아부담을 어느 정도 덜게 되는 40~50대에 다시 치솟는 ‘M형’ 곡선을 그린다.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해 7년간 근무한 김효민(38)씨는 첫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 경우. 대기업에 근무하는 남편보다 김씨의 연봉이 훨씬 많았지만, 양가 부모 모두 아이들을 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 둘과 지내는 시간이 보람되고 전업주부 생활도 큰 불만이 없었던 편이었다”는 그는 요즘 우울증을 앓고 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어느 정도 육아 부담을 덜어, 다시 사회로 복귀할 방법을 찾았지만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육아라는 게 짧으면 3년, 길게 잡아도 10년이면 대략 끝나는 것 같다”며 “이제야 한숨 돌리고 내 일을 해 볼까 둘러봤지만 대형마트의 캐셔 같은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경단녀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이렇게 살자고 힘들게 공부했나 싶어 우울하다”며 “예전엔 전업주부가 능력 없는 여성들의 선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면 고학력에 좋은 직장 다니던 사람들이 많아 국가적 손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남녀 임금격차 40%… 불평등 심화
한창 일할 시기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끊기다 보니 그만큼 남녀 간 임금격차도 벌어진다. 한국의 남성 중위소득 대비 여성의 임금 격차는 3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남성 근로자의 임금이 100일 때 여성 근로자 임금은 그보다 37.5% 적다는 의미다. 이는 OECD 평균 성별임금 격차(15.2%)의 두 배가 넘고, 비교적 남녀 임금 차이가 큰 일본(27.4%)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새사연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녀의 임금격차는 35~39세 67만1,276원에서 40~44세 126만6,560원, 45~49세 159만6,996원으로 급격히 벌어졌다.
여성가족부의 ‘새로일자리센터’ 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구직 상담과 직업훈련, 일자리 매칭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 연구원은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아이 초등학교 입학시기 ‘2차 위기’
첫아이를 친정 어머니에게 맡겼던 대기업 직원 임은성(37)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올해 육아휴직을 했다. 임씨는 “차라리 아이가 어리면 어린이집처럼 종일 맡길 곳이 있지만, 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일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퇴근 때까지 아이를 봐주셨는데, 내년이면 일흔이라 더 맡아 달라고 할 수 없는 처지”라며 “낮 12시30분이면 수업이 끝나는 아이를 종일 학원으로 돌리기 미안해서 휴직을 택했다”고 말했다.
임씨처럼 아이의 영유아기를 힘겹게 버티더라도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면 또 한번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급증한다. 워킹맘들 사이에서 ‘2차 위기’로 불리는 시기다. 초등돌봄교실 등 일하는 부모를 위한 아이 돌봄 서비스 등이 최근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은 부족하다. 직장 여성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탄력근무제나 재택근무지만 여전히 기업들의 생각은 막혀 있다. 둘째를 임신해 6월 출산을 앞둔 임씨는 “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이가 둘이나 되면 과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은 출산 기피로 이어진다. 멀티플렉스 영화상영관 체인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 이지형(31)씨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른다”며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가임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담이 여성에게 쏠려 있는 현실에서 이 수치가 앞으로도 높아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여성은 물론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를 적극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을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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