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발행ㆍ304쪽ㆍ2만원
수컷 붉은부리큰베짜는새 교미 후 황홀경 부르는 촉각 발달 시각 중심ㆍ일부일처제 등 인간과 유사 새를 이해할수록 우리 자신도 더 잘 알게 돼
세상에나, 성적 쾌감을 느끼는 새가 있단다. 믿기 힘들지만 확인된 사실이다. 북극에서 아마존 밀림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수십 년간 새를 연구해온 영국인 조류학자 팀 버케드(셰필드대 동물학과 교수)로서도 그건 듣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동료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붉은부리큰베짜는새 수컷이 꼬박 30분 동안 교미한 뒤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확인해보려고 수컷의 음경기관을 손으로 마사지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사건이 벌어졌다. 날갯짓이 느려지고 몸 전체를 부르르 떨더니 발로 사람 손을 꽉 움켜쥐고 사정한 것이다. 다른 새들도 오르가슴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녀석은 확실했다. 생식기 주변의 촉각이 엄청나게 발달한 거다. 그런데 왜 수컷이지? 암컷은 못 느끼나? 그건 아직 모른다.
버케드 교수가 쓴 ‘새의 감각’에는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사람이 새가 아닌 이상 새의 감각을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과학적 연구 성과와 행동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은 놀랍도록 신비하다. 인간이 아는 세상은 얼마나 한정된 것이며, 세상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 얼마나 다양한 세계를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1974년 발표한 유명한 논문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에 대한 생물학자의 답변이다. 네이글은 느낌과 의식은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은 포기한 적이 없다. 네이글이 김 빼는 소리를 하기 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온갖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실험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성과를 쌓아 왔다.
책은 감각의 종류에 따라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여기까지는 인간이 아는 감각인데, 그 다음에 나오는 감각이 낯설다. 자각(磁覺), 곧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감각이다. 인간에겐 없는 이 감각 덕분에 새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길 잃지 않고 날아갈 수 있다. 몸에 GPS를 내장한 셈이다. 전체 7장 중 마지막 장은 정서를 다룬다. 아니, 새도 감정을 느끼고 정서 생활을 한다고? 조류 사회의 스트레스, 우정, 부부간의 애정, 돌봄, 사회적 협동 등 인간이 잘 몰랐던 새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
조류의 감각 세계는 한마디로 경이롭다. 키위새는 장님이나 다름없지만 땅 밑 10㎝에 있는 지렁이 냄새도 맡을 수 있는 뛰어난 후각을 지녔다. 땅 속 지렁이가 기어가는 소리를 듣고 잡아먹는 새도 있다. 인간은 혀에만 맛봉오리가 있어 맛을 느끼지만 새는 부리에도 맛봉오리가 있다. 어떤 새들은 계절에 따라 뇌의 각 부위 크기가 달라지고 철마다 노랫소리가 달라진다. 오스트레일리안까치는 무리 전체가 덤불이나 울타리 주위에 서서 구성진 가락으로 합창을 함으로써 결속력을 다진다, 마치 군가를 합창하는 군인들처럼. 놀라운 사례는 줄줄이 이어진다. 아프리카 해안에 무리지어 사는 유럽홍학은 내륙으로 수백㎞ 안쪽 호수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바로 알아채고 알을 낳으러 날아간다.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까지 11,000 ㎞를 8일 동안 쉬지 않고 한번에 날아간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아내려고 과학은 계속 도전 중이다.
저자는 인간과는 다른 새의 감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사용한 실험 방법도 자세히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훔볼트, 다윈, 앨프리드 뉴턴, 스팔란차니, 오듀본 등 조류 연구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의 이야기, 온갖 기발한 방법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해낸 실험 사례, 가장 오래되고 간단한 방법인 관찰과 해부로 시작한 연구가 3D(3차원 입체) 스캔으로 새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는 데 이른 최신 성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룬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 질문은 좀더 구체적이라야 마땅하다.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듯이 새도 별별 새가 다 있으니. 머리말에서 저자가 던진 질문은 이렇다. 북극해의 황제펭귄이 수심 400m의 칠흑 속으로 다이빙하는 느낌은 어떨까, 중앙아메리카 정글의 붉은머리무희새 수컷이 되어 새침 떠는 암컷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교미 시간이 10분의 1초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100번 넘게 사랑을 나누는 유럽억새풀새 한 쌍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끊임없이 먹어서 일주일 만에 엄청나게 뚱뚱해져서는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한 방향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등등. 책은 이 질문들에 답한다.
별 게 다 궁금하군. 그렇게 말할 게 아닌 것이 새는 여러 면에서 인간과 닮았다. 시각을 주로 이용하고 기본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며(바람도 피우지만) 사회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새를 더 잘 이해할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도 향상될 것”이며 바로 그때 “우리 자신의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중심주의가 놓치거나 무시해온 새의 놀라운 감각 세계가 그 길을 열 것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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