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멀쩡히 주차돼 있던 차가 아침에 보니 찌그러지거나 긁혀있어서 울화가 치밀었던 경험, 차가 있으신 분들은 많이들 공감하실 겁니다.
지난달 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올린 글(▶사연 바로보기)이 화제가 됐습니다. 요약하자면, “차가 긁혀 있어서 관리사무소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해 가해 차량을 찾아냈다. 경찰에 증거자료를 제출했지만 경찰은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글쓴이는 "주차장에서 남의 차 박으면 무조건 도망가면 되겠네? 뭐 이런 법이 다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물피(물적피해) 도주범, 정말 처벌할 방법이 없을까요? 이 사연의 경우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물론 형법상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피 도주는 형법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형법상 재물손괴는 ‘일부러’ 남의 물건을 파손한 경우에 한정되며, ‘실수로’ 망가뜨린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한 도로교통법 151조 “차의 운전자가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의 건조물이나 그 밖의 재물을 손괴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금고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 역시 도로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사연과는 무관합니다.
그렇다고 이른바 ‘주차 테러’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를 처리하지 않고 도주함으로써 다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첫 번째 예로, 주차된 차에 사람이 타고 있어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쫓아가는데도 가해차량이 도망가는 경우입니다. 한문철 변호사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면 운전자는 급하게 도주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사고로 단순히 차가 찌그러진 정도가 아니고 뭔가가 깨져 뾰족한 파편이 생겼다면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다른 차량이 파편 때문에 타이어에 펑크가 나거나, 파편을 피하려다 다른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위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가해차량이 도망간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물피사고 후 가해자가 취해야 할 조치의무 규정이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찰에 신고해서 수사를 진행할 순 있습니다. 증거를 확보해 가해자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순 없습니다. 합의를 하거나 보험처리를 하는 게 전부죠. 가해자가 계속 발뺌을 한다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소송비용을 따져보면 배보다 배꼽이 커 현실적인 제재 방법이 되긴 힘들어 보입니다.
물피도주 사고는 한 해 평균 40만 건이 발생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2013년 1,418억원이 가해자불명 교통사고 보험금으로 지급되는 등 보험금 누수도 심각하기 때문에 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물피 도주에 대한 전자공공토론을 열었습니다. 토론의 설문결과 응답자의 81.2%가 물피 도주 교통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는 16.5%에 불과했습니다. 또 설문 참여자의 78.9%는 가해자 처벌을 현행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이찬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0명은, 물피 교통사고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으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발의했습니다. 이찬열 의원실은 “물피사고 후 도주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조속히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조한울 인턴기자(한양대 영어영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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