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동료작가들의 근황을 이야기 하다 보면 몸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시 쓰는 아무개는 어디가 망가졌다고 하고, 소설 쓰는 아무개는 몇 개월 째 투병 중이며 극작을 하는 아무개는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 중이라고 한다. 곁에 두고 자주 만나는 지인 들 중 팔할은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작가가 많은데 근황이 모두 골골하다.
나 역시 근래엔 일종의 직업병처럼 찾아오는 디스크에 고전 중인데 일명 이 ‘디스크 시즌’ 이 찾아오면 책상에 앉아 있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감을 앞둔 원고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들의 전화를 피하는데 주력하곤 한다. 이 시기엔 그저 빚쟁이처럼 숨어 지내는 편이 낫다.
글을 쓰며 사는 일이란 밤을 세우는 일이 빈번한 일이고, 통계에 의하면 작가들은 일생 동안 타인이 사용하는 밤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엔 건강 때문에 밤에 작업을 하지 않고 아침이나 오후로 글 쓰는 시간을 바꾸어 작업을 하는 지인들의 조언도 곰곰 떠올려 보곤 한다. 매물을 시장에 내놓는 시기나 저쪽의 자부심을 물끄러미 여겨보면 아침형 작가들이 건강해 보인다. 시절도 수상하고, 마음이 자꾸 약해지니 건강을 생각해서 술ㆍ담배와 절연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작업방식을 바꾸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편의 입장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작가들도 있다. 주력(酒力)이 필력(筆力)이라고 주장하는 시대도 지났지만 여전히 저렇게 술을 마셔대는데 언제 작업을 하지 싶을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는 작가도 있고, 영감님(muse)은 밤에 주로 오시기 때문에 낮엔 마중 나가는 일로 보낸다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낮 동안의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이나 독서로 보낸다고 한다. 물론 저녁엔 정신건강을 위해 드라마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뜬 눈으로 아침에 글을 쓰는 일이 민망해서 아침형 작가를 포기했다는 작가도 보았다. “난 반 정도는 눈이 감겨야 써지거든. 너무 밝으면 민망해서…” 이런 야설작가도 보았다. “아침 빛을 받으며 책상에 앉아 있으면 주변의 생활인들에게 쑥스러워서 글이 오글거려.” 그들의 창작방식이 어떻든 간에 내 쪽에선 그들의 간이 걱정스럽다.
간은 신경이 없어, 통증에 무감하고 통각자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뒤늦게 병이 발견 된다. 참 무심하게 사람 몸 속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다. ‘세계’에 예민하고 사물과 감정에 대해 늘 깨어 있고 싶은 작가들에게도 간은 훈련되지 않는다. 작가들의 간은 언제라도 마중 나가고 싶은 영감님이 아니다. 위장이 쉬고 있을 때에도 ‘갸르릉’거리는 고양이처럼 신경을 바짝 세우는 쪽이라면, 간은 처가살이하는 동안에는 입덧 한번 없이 제 자리를 보존하는 쪽이다. 간은 몸 속의 흉기가 되어서야 존재를 알린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의 부위 중 간이 항상 궁금한 편이다. 건강검진을 지독히도 미루고 두려워하는 전업작가들의 간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크다. 나는 좋아하는 지인들이 생기면 그들의 간이 정말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간이 시원치 않아 이별해야 하는 경우를 보아왔고 요즘 들어 다른 이유도 아닌 간 때문에 이별을 해야 하는 경험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계형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몸은 늘 피로하고 골은 늘 가뭄이네요’ 라고 어느 스포츠 신문의 신간 인터뷰에 고백도 해본다. 어릴 적엔 세상에 열심히 속아주느라 간을 낭비했고, 이제는 세상이 시를 숨기지 못하도록 애쓰는 일로 간을 속이고 있다. 나는 사는 동안 가족에게 한번도 ‘나 간이 아파…’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내와 어린 것들이 잠들면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매일 밤 작업실로 돌아온다. 귀한 작업 이후 돌아오는 것이 미약할 때마다 ‘간 때문이야…’라는 변명을 남몰래 해보는 작가들이 쓸쓸한 건 이 때문이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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