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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권력은 힘을 잃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입력
2015.03.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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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제스 나임 지음ㆍ김병순 옮김

책읽는수요일ㆍ528쪽ㆍ2만2,000원

이동 혁명과 의식 혁명으로

권력의 파워는 축소됐지만

美ㆍ中 등의 힘은 사라지지 않고

미치는 범위가 일부 줄어들 뿐

인간에게 권력은 오랫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권력을 틀어쥔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에 간섭했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행정부와 기업의 관료 조직은 늘어나는 문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점점 거대해졌고 늘 성공했다. ‘권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대한 힘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권력의 종말’이란 제목은 도발적이다. 하지만 저자 모이제스 나임의 생각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거대권력의 종말’이라고 해야 옳다. 권력은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고, 단지 그 모습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나임이 권력이란 단어를 재정의하면서 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임이 재정의한 권력이란 실체 없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그 흐름을 통제할 수 있도록 관료제라는 거대한 장벽을 쌓았기 때문에 견고한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장벽의 주인들은 완력ㆍ규범ㆍ선전ㆍ보상이라는 다양한 수단을 써서 개인의 행동을 강제했다.

이어 나임은 사회 각 분야에서 거대권력이 힘을 잃고 미시권력이 힘을 얻는 과정을 묘사한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나임이 1996년부터 2010년까지 편집장을 맡았던‘포린 폴리시’는 국제정치의 최신 이슈를 다루면서 무정부 상태, 실체 있는 권력이 힘을 잃어가는 국제 정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연성 권력’(soft power) ‘네트워크 권력’과 같은 개념을 제시했었다.

2011년 미국 뉴욕 월가를 비롯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점령' 운동은 기존 권력 체제에 저항해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한 미시권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1년 미국 뉴욕 월가를 비롯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점령' 운동은 기존 권력 체제에 저항해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한 미시권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력의 종말’은 국제 정치에서만이 아니라 국내 정당정치, 시장, 미디어와 문화 영역에서 이 같은 변화를 두루 감지하고 종합했다. 이제 어떤 분야에서든 개인과 소수 정예 집단이 목소리를 내고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령한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가 단 3주만에 전세계 2,600여 도시로 번진 대규모 ‘점령’ 운동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거대권력은 왜 힘을 잃었나. 나임은 원인을 세 가지 혁명으로 요약한다. 우선 양적 증가 혁명으로 권력의 주체인 사람의 수가 늘었다. 둘째로 교통과 통신의 발전인 이동 혁명을 통해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교류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도전자들은 굳이 옛 권력에 영합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의식 혁명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 가치를 고수하지 않고 생각을 쉽게 바꾸며 변화를 열망한다.

나임은 변화 속에서 경계해야 할 점을 빼놓지 않는다. 권력이 분산돼 개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정부의 통치력이 약화돼 사회가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극단주의가 큰 흐름을 일으킬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슬람국가(IS)의 발흥이 그러한 예다. 또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치는 범위가 부분적으로 축소될 뿐이다.

페이스북은 1월부터 2주마다 책 한 권씩을 읽고 토론을 진행하는 ‘책의 해’ 캠페인의 첫 번째 순서로 이 책을 선택했다. 페이스북 역시 마크 저커버그라는 개인이 만들어낸 미디어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새로운 권력의 주체가 될 평범한 개인을 겨냥해 쉽게 쓰인 ‘권력의 종말’은 정치인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권력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내면화하도록 돕는 ‘권력 안내서’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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