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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표범 간 먹고… 그린란드 종주의 날카로운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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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표범 간 먹고… 그린란드 종주의 날카로운 기억들

입력
2015.03.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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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갓 잡힌 바다표범의 간을 한 움큼 손으로 뜯어먹은 적이 있다. 4년 전 홍성택 탐험대를 동반 취재하러 그린란드에 갔을 때 이야기다. 그린란드 내륙을 종단하는 본격적인 탐험에 나서기 직전 썰매견을 먹일 고영양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일루리삿 앞바다로 바다표범 사냥을 나갔다. 하루 종일 빙산의 바다를 헤맸지만 결국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던 중 한 현지인이 방금 잡은 거대한 바다표범을 해체하는 장면을 만났다. 순백의 얼음 위에서 붉은 살덩이가 해체되는 풍경은 몽환적이었고 그로테스크했다. 당시 장면을 찍은 후배 사진기자는 유엔국제보도사진상을 거머쥐었고, 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바다표범 생간을 뜯어먹은 날카로운 기억을 얻게 됐다. 내게 그 야만스러운 식성을 발휘하게 만든 건 일본의 전설적인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1941~1984)의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란 책에서 읽은 두어 줄이다.

책은 저자가 29세의 나이에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이후 북극의 얼어붙은 바다에서 펼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북극권 1만2,000㎞를 개썰매를 타고 가로지르는 것. 일루리삿을 출발해 그린란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 캐나다령 북극권을 횡단하고, 미국 알래스카의 베링해협에 이르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는 영하 30~50도의 추위 속 첩첩의 장애물들을 넘어야 했다. 얼지 않은 바다, 턱없이 부족한 식량, 24시간 해가 뜨지 않는 흑야의 어둠, 혹한에 지쳐가는 체력, 북극곰의 위협과 썰매견들의 도주 등.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그 험난한 여정을 그는 과장 없이, 투박해서 더 사실적인 문장으로 담아냈다. 그는 ‘달빛조차 너무 차가워 바늘로 찌를 것 같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오로지 전진했다.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워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며 용기를 내 전진해야 했다. 몇 번이고 중단하고 싶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참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책 제목에 있는 안나는 그와 동행한 썰매견들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개의 이름이다. 코츠뷰는 2년여에 걸린 탐험의 도착점이다.

탐험기간 중간중간 이누이트 마을에 머물 때를 제외하곤 그의 먹거리는 얼어붙은 백곰고기나 바다표범, 카리부(순록), 넙치 등이었다. 그는 얼어붙은 바다표범의 간을 먹을 때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다’고, 갓 잡은 카리부의 뜨끈한 생간을 먹을 때 ‘초콜릿이 녹아 내리는 듯한 감촉은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라고 적었다.

홍 대장은 개썰매를 몰고 무인지대인 그린란드 내륙 북극권 종주를 결행하도록 부추긴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했다. 우리 탐험대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엄두도 내지 못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나오미의 혼을 느끼고 싶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바다표범 생간을 맛 본 건 그의 고된 탐험에 작은 위로가 됐던 ‘아이스크림처럼, 초콜릿처럼 녹아 내린’ 그 맛까지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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