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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기 탈출 이미지트레이닝

입력
2015.03.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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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3일 새벽 4시 11분. 지구 정반대의 칠레 남단에서 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M9.5지진이 발생했다. 23시간이 지난 이튿날 새벽 최고 6.4m의 쓰나미가 잠들어 있던 일본 동해 전역을 삼키기 시작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직후 관련 데이터를 확보했으면서도 쓰나미가 상륙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경보를 발령했다.

사망 142명, 부상 855명, 이재민 15만 명, 그리고 6만4,000채의 건물과 선박 2,428척이 부서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이 23시간의 골든타임을 놓쳐 피해를 키웠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비상근무자가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재난관리에는 이미지트레이닝(Image Training)이 매우 중요하다. 여태껏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매뉴얼에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나아가 익숙한 상황이라도 여태까지 해 오던 관행을 되풀이 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다. 평소부터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 그 결과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긴박한 상황에서 실패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대재난 상황에서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적인 막대한 피해로 연결된다.

최근 어느 학교 졸업식에 갔었다. 실내체육관은 2층 관람석까지 졸업생, 내빈, 학부형 등 많은 사람들로 빈 공간이 없었다. 졸업식장에는 폭죽처럼 안전을 위협하는 물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지트레이닝을 해 보았다.

1,000여명이 몰려있는 실내 공간이다. 혹시 출입구 쪽에서 화재나 폭발, 붕괴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출입구 쪽을 살펴보니 사람들로 가득 해 돌발상황이 아니더라도 빠져나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더구나 출입문은 좁고 교실과 공동로비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고가 발생하면 인간장벽이 생길 게 분명했다.

다른 비상구가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넓은 체육관 벽 어디에도 보조출입문이나 비상구는 보이지 않았다. 비상구가 있다면 이런 날은 미리 개방해 두는 것은 물론이고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방송을 듣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출입문만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아 출입구는 하나뿐이고, 비상구는 없으며 있더라도 굳게 잠겨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체육관 한 가운데 있는 나는 이런 위험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1시간 20분의 졸업식은 다행히 무사하게 끝났지만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만일 전국의 학교 체육관이 이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우리는 무의식 중에 너무 많은 위험한 행위를 하고, 또 그런 행동이나 위험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더욱이 편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건축물, 교량, 선박, 철도, 지하철, 공장, 비행기, 지하 공간, 시설물이 언제 재난요인이 되어 생명을 위협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이상 재난피해가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행위의 하나가 ‘위기탈출 이미지트레이닝’이다.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생활밀착형 안전확보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이나 행위, 현재 있는 곳의 위험을 평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가을 부여 군수는 모처럼 체육관에서 열리는 아이돌 공연에 너무 많은 지역 청소년이 몰리자 체육관 수용정원 외의 모든 관객은 실외 영상 관람을 조건으로 행사를 허락했다. 당연히 지역사회의 반대, 아이돌을 못 보게 된 청소년의 항의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지역주민의 안전을 우선한 결정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처럼 위기탈출 이미지트레이닝을 생활화하고 실천한다면 안전사회는 한발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윤용선 국민안전처 재난대응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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