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권익위서 주창, 국회 "활동 제약할라" 서랍 속에
세월호 참사로 다시 정무위 논의, 지역 민원 해결은 부정청탁 예외로
국회에 법안이 제출된 지 929일만에 세상에 나온 김영란법이 후폭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조항은 조용히 수정하면서도, 법의 세부적 내용에 대해선 당파적 셈법에 따라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2011년 6월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부정한 청탁을 받은 공무원은 처벌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주창해 그의 이름을 딴 이 법은 2012년 8월 권익위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뒤 부처 간 조율과정을 거쳐 2013년 7월 국무총리 중재안 형태로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국회는 자신들의 활동을 제약할 김영란법을 조용히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문제가 불거지자, 제출 9개월 만인 지난해 5월 김영란법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렸다. 당시 대다수의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대법관 출신이 만든 법인데 설마 법리적 문제가 있겠냐’며 법의 위헌성과 허점을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다행히 공청회 과정 등에서 법의 위헌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 정무위는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지난해 5월과 12월 모두 처리가 무산됐다.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여론에 ‘살펴보니 문제가 많더라’며 처리를 미루던 정무위는 갑자기 공직자가 아닌 기자와 사립교원을 적용대상에 추가했다. 법의 필요성과 완결성이 아닌 정치적 쟁점으로 번진 순간이다.
논점이 흐려지면서 정무위는 조용히 자신들과 관련된 조항에 손을 댔다. 원안이 국회의원의 부정청탁 예외로 ‘공익적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직접 법령의 제정·개정 등을 요구하는 행위’만 규정했던 것을 ‘유권자 등 3자의 민원을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행위’까지 허용한 것이다. 입법활동 외에 지역민의 민원을 해결해도 처벌받지 않을 구멍을 만든 셈이다. 정무위 소속 한 중진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국회의원의 책무고 공익적인 민원만 해당된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사실상 국회의원이 가장 빈번히 적용될 부정청탁 유형을 제거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영란법 정무위안은 지난 1월 국회의원 민원 허용 내용을 조용히 포함해 법사위로 넘어왔다. 이후부턴 속도전이었다. 법사위 공청회 등 공식 절차를 거친 여야는 “2월 임시국회 처리를 국민과 약속했다”며 본회의 종료 전날 최종 담판을 통해 중요 사안을 모두 결정한 것이다.
최종 담판은 오후 5시부터 7시, 식사를 마친 8시부터 10시30분까지 진행됐다. 식사 전까지 여야는 미리 합의된 공직자 가족 처벌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하고,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를 포함시켰다. ‘가족해체 가능성’을 외친 여당의 주장을 야당이 받아들이며 법 적용의 가능성을 전반적으로 줄인 것이다.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 포함은 정무위가 법사위 논의 단계에서 넣자고 빼놓은 것을 뒤늦게 여야 대표가 발견해 추가하는 수준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여야는 법 시행 시기를 두고 기싸움을 벌였다. 법 통과 후 1년으로 규정한 원안을 유지하자는 야당과 2년 뒤 실시하자는 여당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결국 여야는 1년 6개월 뒤 시행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1년 뒤면 내년 4월 총선 전이라 19대 의원 모두 적용을 받지만, 6개월이 연장되면 법 적용 영역 밖이 된다. 결국 법률적으로 완성도가 부족한 여러 조항들에 대한 막판 검토와 토의가 아닌, 자신들의 실리와 관련해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얘기다. 여야 최종 담판 사정에 밝은 한 국회 관계자는 “이 정도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은 여야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었지만 (2월 통과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여야가 조율했다는 김영란법 합의안은 예상대로 3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영란법의 최종 모습은 법의 또 다른 큰 축이었던 이해충돌 방지 조항에 대한 정무위 추가입법 과정이 끝나고, 법의 세부적 내용을 결정할 대통령령 등이 제정되면 결정된다. 정무위는 내달 법안소위를 열고, 권익위가 세부 항목을 추려오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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