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망인 금융전산망을 운영하는 금융결제원의 원장직은 임기가 3년입니다. 1986년 설립 이래 예외없이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이 맡아온 자리입니다. 그런데 시중에선 “금융결제원장 임기는 3년 아닌 6년”이란 우스갯말이 돕니다. 원장 임기를 마치는 대로 후임 원장 자문역인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상 또 한 번의 3년 임기를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형식상으론 1년 단위 재계약직이지만 다른 자리를 찾아 영전하지 않는 한 재계약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상임고문을 재작년 4월 임기를 마친 전임 원장이 맡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전임 기관장 예우 차원에서 고문직을 주는 관행은 우리뿐만이 아니다”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예우 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우 수준에서도 금융결제원은 여느 기관과 차원을 달리합니다. 이곳의 고문은 연봉(5,000만원 수준)과 업무추진비 등 상당한 금전적 지원과 함께 전용 사무실과 승용차까지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억5,000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원장 재임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맡은 역할에 비해 엄청난 호사를 누리는 셈이죠.
금융결제원에서 3년 임기를 ‘보너스’로 받는 자리는 또 있습니다. 전무이사입니다. 대주주 격인 한은이 차지하는 원장, 관피아(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 몫인 감사를 제외하고 내부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입니다. 간혹 이 자리마저 한은 출신이 꿰차기도 하는데요. 이들은 3년 임기를 마치는 대로 금융결제원 자회사인 서울외국환중개로 이직해 감사가 됩니다. 명분도 업무 연속성도 없는, 이래저래 납득하기 힘든 인사이지만 벌써 10년째 불변의 법칙처럼 시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외국환중개의 평균 연봉(2013년 기준)이 1억3,570만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급여 수준도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임직원 600여명을 둔 아담한 금융기관의 별스러운 얘기라며 지나치기엔 찜찜합니다. 2010년 금융위원회 감사 결과를 보면 금융결제원 총수입의 55%가 수수료 수입입니다. 자사가 구축한 지급결제망의 사용료를 금융기관이나 소비자에게 물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올린 겁니다. 물론 금융기관은 금융결제원에 치르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고객에게 전가합니다.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이용 또는 자금 이체 때 은행에 내는 수수료가 비근한 예죠. 금융결제원이 ‘3+3년 임기 보장’이라는 희한한 관행을 유지하느라 치르는 비용이 소비자 호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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