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민주주의·시장경제 등 함께 지키자던 표현 없애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에서 2013년부터 사용해온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일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외무성은 4일 현재 홈페이지 ‘최근의 일한관계’ 항목에 한국을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일본)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소개하던 것과는 달리 내용의 상당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외무성 관계자는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자주 쓰는 표현에 맞췄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아사히신문은 “한국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외무성의 한국 관련 기술 변경이 아베 총리의 시정 방침 연설 내용에 입각한 것으로 아베 총리의 의중이 담겼을 가능성을 높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2014년 1월 연설에서는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표현했다. 외무성은 홈페이지에는 이때까지만 해도 기존 내용을 수정하지 않았다.
반면 아베 총리는 지난달 연설에서는 한국을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외무성도 이 발언에 맞춰 최근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연설에서 일본을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가치를 공유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추구해 나가는 중요한 이웃”이라고 언급했다.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기본적 가치 공유라는 표현을 최근 삭제한 데는 박근혜 정부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 관계자도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 “한국 사법,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 문제 등이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수년간 표류되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을 촉구하기 위한 아베 총리의 의도적 자극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더 이상 과대평가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사바 유키(?羽祐樹) 니가타현립대 정책연구센터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로 양국 국민이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 이외에도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이 늘고 있어 정치분야에서 가치관 공유를 호소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단지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을 남긴 것은 관계 개선을 위한 신호”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 문부과학성은 4일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전국 초중고교 보조교재용 지도를 쓰지 말라는 취지의 통지를 전국 교육위원회에 발송키로 했다고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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