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치매라서…" 소환 미루다
위장 투병 논란 일자 불러 조사
신한銀 사태 수사 때와 같은 결론
이른바 ‘남산 3억원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된 라응찬(77)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또 다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라 전 회장 측이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정권실세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이 의혹은 2010년 신한은행 사태 수사 때에도 제기됐다가 무혐의로 끝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결론이 내려짐에 따라 미궁으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3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옛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현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2013년 2월 경제개혁연대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라 전 회장과 이상득(80) 전 의원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공소시효(7년)가 임박한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남산 3억원 의혹’은 2010년 신한은행 횡령ㆍ배임 사건 당시에도 불거졌던 사안이다. 검찰은 라 전 회장 측 인사인 이백순(63) 전 신한은행장이 2008년 2월 이희건 명예회장 자문료 중 3억원을 횡령, 이를 서울 남산자유센터 정문 주차장 입구에서 신원미상자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자금의 최종적인 수령자는 이상득 전 의원”이라는 신한은행 핵심 관계자 진술도 확보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3억원이 외부 인사에게 건네진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 전 행장이 (3억원 횡령)혐의사실 자체를 부인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사태 재판 과정에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라 전 회장 지시로 이 전 의원 측에 돈이 건네졌다”는 당시 신한은행 비서실장의 증언이 나왔고, 신상훈(67)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전 행장이 직원들에게 라 전 회장 지시라며 함구령을 내리고 3억원을 조성해 이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시민단체에서 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며 고발장을 내게 된 이유다.
그러나 검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신한은행 전ㆍ현직 임직원들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면서도 정작 라 전 회장 소환은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가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고 있다는 이유였는데, 지난해 말 신한은행 동우회 송년행사 참석 등 대외 활동을 버젓이 하고 심지어는 올해 초 농심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위장 투병’ 논란이 일자 지난달 6일 소환해 조사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3억원 전달과 관련한 여러 명의 증언이 있는데도 검찰이 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전직 대통령 측근에 대한 봐주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야당 정치인과 자사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했다”며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등을 고발한 사건은 계속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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