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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Mr. Market <1> 글ㆍ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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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Mr. Market <1> 글ㆍ김지훈

입력
2015.03.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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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Mr. Market 글ㆍ김지훈

“걱정마! 깨끗한 여자들 알고 있어”

#1 올두바이.

안내를 맡은 솔레이는, 탄자니아군 장교 출신으로, 탄자니아 대학교 고고학 조교로 일한다. 강인해 보이는 턱수염과 떡 벌어진 어깨, 흑인 특유의 탄력 있는 피부……. 그는 나에게 탄자니아식 커피를 권했다.

탄자니아식 커피는 커피 원두를 감싸고 있는 과육을 벗기지 않고, 커피체리 그대로 물에 끓인 후, 염소 젖으로 만든 버터를, 수제비 뜯듯이 집어넣는다. 최고라고 말할 순 없지만……. 독특하다.

솔레이는 여자가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그동안 그가 안내를 맡았던 사람들이 어떤 놈팡이인지 대충 짐작된다.

솔레이가 음흉하게 웃으며, 자꾸 여자 타령하는데,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솔레이는 비굴하게 웃어보인다.

“걱정 마! 깨끗한 여자들을 알고 있어.”

미친 새끼, 뭐 어쩌라고.

깨끗한 여자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여자를 뜻한다.

탄자니아 젊은 여성의 30% 이상이 에이즈 보균자다.

탄자니아 평균 수명은 55세. 현대의학을 감안할 때, 놀라울 정도로 짧다. 태어나는 아이들의 90%는 부모로부터, 에이즈를 물려받는다.

여성의 에이즈 보균율이 30%인데, 태어나는 아이들의 90%가 에이즈에 걸리는 이유는, 아버지의 80% 이상이 에이즈 양성 반응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에이즈 환자가 아닐 확률은, 고작 10% 이하 ….

솔레이 역시 에이즈 보균자이다.

그에겐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조교 수입만으로는 어렵다.

여행 안내원을 비롯하여 포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탄자니아에서는, 아이들 교육비보다 약값이, 더 중요한 이슈이다.

곧바로 올두바이 계곡으로 가고 싶었지만,

솔레이가, 먼저 시장에 들려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뿔레뿔레.”라고 한다. ‘뿔레뿔레’ ……. 천천히, 천천히. 중국어로 만만디 만만디….

킬리만자로처럼 높은 산을 오르려면, 천천히 올라야 한다. 서두르면, 고산병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그렇지…. 스케줄에도 없는 시장 방문이라니….

재래식 시장을 구경하다가, 염소를 파는 곳에 멈춰 섰다.

솔레이는 염소 중에서, 어느 녀석이 맘에 드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귀여운 작은 염소를 가리켰다. 솔레이가 장사꾼에서 지폐를 건넸다.

“뭐하는 거야? 저 염소가 귀엽다는 거지. 사겠다는 게 아니야.”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무슨! 염소를 키우지 않을 거야.”

내가 말했지만, 솔레이는 뜻 모를 미소만 지었다. 탁 트이게 밝은 미소는 아니었다.

에이즈와 피곤으로 찌든, 병든 아이를 먹여 살리고 약값을 대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

장사꾼은 내가 보는 앞에서, 염소의 다리를 잘라냈다. 울부짖는 염소……. 솟구친 염소 피가 내 옷에도 튀었다. 장사꾼은 염소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냈다. 그때까지도 염소는 비명 지르며, 몸부림친다.

장사꾼은 희번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새끼 염소의 심장을 보여주었다. 검붉은 피가 절여 있는 장사꾼의 손.

그리고 자부심 넘치는 미소.

새끼 염소가 가엾지도 않은 걸까? 머리를 강타하는 커다란 의문….

* 작품에 등장하는 ‘꼬레아’는 가상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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