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없고 무기력증에 빠진 내각
박 대통령 만기친람 국정운영이 문제
책임총리ㆍ책임장관에 정권명운 달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과거에는 일반 국민도 어느 부처 장관이 누구인지 알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관들의 심기일전을 촉구하는 의도였겠지만 정곡을 찌른 말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그럴진대 일반 국민은 보나마나다. 이름을 아는 장관이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장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업무 능력이 꼭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관심을 덜 받는 부처도 있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장관도 개중에는 있다. 반면 하루걸러 언론에 등장하지만 의원들로부터“무능하니 경질하라”는 지청구를 듣는 장관도 있다.
분명한 건 이 정권에 몸담은 장관 대다수가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기용된 각 부처의 전ㆍ현직 장관급 인사가 32명에 달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남은 경우는 드물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한 정책을 만들어 내거나 이 정책이 옳다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장관도 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맞서거나 끝까지 설득하려는 장관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국민 눈에는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장관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장관 개개인이 움직이지 않으니 현 정권에 뚜렷이 내세울 만한 치적이 있을 리 없다. 경제 쪽에는 ‘불어터진 국수’라도 좀 먹을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 조차도 없다. 외교안보가 비교적 선방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북한ㆍ일본 관계에선 전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 국무부 차관이 박 대통령을 거명만 하지 않았을 뿐 ‘민족감정을 악용해 값싼 정치와 도발을 하는 사람’으로 매도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도 그리 원활하지 않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국방은 연일 터지는 사건 뒤치다꺼리에 허우적거리고, 검ㆍ경은 사회 분위기만 옥죌 뿐이다. 노동은 사회적 합의 도출을 못한 채 겉돌고 있고, 복지는 늘 재원 부족으로 허덕인다. 교육은 이념 갈등으로 멍들고, 문화계는 인사 잡음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어느 부처를 들여다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곳이 없다. 나머지 분야 역시 그저 일상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유독 이 정권의 내각이 무기력한 일차적인 책임은 장관들에게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소신 있는 인물이 안 보인다. 나이가 많다 보니 진취성이 떨어지고 생동감도 부족하다. 톡톡 튀는 사람도 없고 말 잘 듣는 모범생들만 모아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내각의 색채를 따지자면 칙칙한 회색에 가깝다.
존재감 없고 무기력한 내각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 있다. 사람을 고를 때 능력이나 소신보다는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용인술이 이런 현상을 낳게 했다. 예전에 눈여겨봤던 사람을 적어 놓은 수첩에서만 골라 쓰다 보니 인재 풀도 협소하다. 만기친람식 국정운영 스타일은 장관들을 주눅들게 한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만 받아 적는다는 ‘적자 생존’ 내각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솔직히 이 자리는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퇴임을 앞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말에는 자조와 무력감이 짙게 묻어 난다.
박 대통령은 이번 개각에서 친정 체제를 대폭 강화했다. 장관 18명 중 3분의 1을 친박 정치인으로 채워 ‘친위내각’으로 만들었다. 당에서 차출한 장관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인 내년 1월 중순까지 사퇴해야 하는데 벌써들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 이완구 총리조차 총선 불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적당한 시점에 밝히겠다”며 엉거주춤하고 있는 판이니 이들을 뭐랄 것도 아니다. 이러니 총선 경력 관리용으로 장관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0개월짜리 시한부 내각’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청와대 비서실장 인선이 끝나 여권 개편이 마무리됐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박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확실한 권한을 주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인사권 등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고 업무성과에 따른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국정의 무게 중심은 내각에 두어져야 한다. 책임총리, 책임장관에 박근혜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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