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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가슴 때릴 기적… 평창에서 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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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가슴 때릴 기적… 평창에서 쏘겠다

입력
2015.03.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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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단 지 10년 만에 35골 34어시스트 대기록

“축하만 해주다 축하를 받으니 기쁨이 두 배가 되네요.”

2014~15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최고 별로 우뚝 선 김기성(30ㆍ안양 한라)은 활짝 웃었다. 2008~09 데뷔 시즌 신인왕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해 두 차례 팀 우승을 일궜지만 최우수선수(MVP) 영예는 외국인 선수 브락 라던스키(2008~09), 패트릭 마르티넥(2009~10)에게 돌아갔다.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김기성이 마침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 시즌 28골 42어시스트의 ‘커리어 하이’ 기록으로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리그 사무국이 선정한 MVP를 수상했다.

안양빙상장에서 2일 만난 김기성은 “군 복무를 마치니 시즌 3경기가 끝났더라. 뒤늦게 팀에 합류해 큰 상을 받을지 생각도 못했다”며 “더구나 한국인 최초로 MVP를 수상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좋은 팀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개인적인 영예를 누렸다는 그는 이날 선수단에 피자 10판을 돌렸다.

김기성은 경성고 시절부터 ‘한국 아이스하키의 희망’으로 불렸다. 연세대 2학년이었던 2005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10년간 주포로 활약하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44경기에서 35골 3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대표팀 사상 최다 포인트(골+어시스트) 기록이다. 그는 “일단 눈앞의 아시아리그 통합 우승을 목표로 세운 다음 2년 뒤 평창올림픽에서 1승의 기적을 이루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선수 최초로 아시아리그 MVP 수상을 했는데.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이다. 상무에 있다 3경기 늦게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한국인 최초 수상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작년까지 윙으로 뛰다가 센터로 포지션을 바꿨는데 브락 라던스키와는 신인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큰 문제가 없었다. 걱정은 마이크 테스트위드와의 호흡이었는데 동생(김상욱)이 지난 시즌까지 이 선수와 함께 뛰어 많은 조언을 해줬고, 상무에서 어떤 스타일로 플레이를 하는지 눈 여겨 봤던 덕분에 잘 맞았다.”

-MVP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을 텐데.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이라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웃음). 이 자리를 빌어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 드리고 기도해준 모든 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팬들이 한국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그 동안 라던스키와 마르티넥이 MVP를 수상한 것을 지켜봤을 텐데.

“나는 언제쯤 저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마침내 이뤄졌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간식으로 피자 10판을 오늘 돌렸다. MVP 상금은 따로 없어 자비를 털었다(웃음).”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상무에 있는 동안 몸 관리를 잘 했다. 비시즌 때 특별히 할 게 없으니 운동만 했다. 어느 정도 나이도 있으니 잔부상을 조심하기 위해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5년 만에 통합 우승을 이룰 기회를 잡았는데.

“(한라는 7일부터 하이원-오지 이글스의 준플레이오프 승자와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기대가 큰 만큼 부담도 만만찮다. 정규리그 우승을 했으니까 통합 우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다. 어느 팀과 붙든지 쉽지 않을 것 같다. 단기전은 한 선수가 ‘미치면’ 답이 없다. 미치는 선수가 우리 팀에서 나와야 하는데 내가 미쳤으면 좋겠다.”

-2011년 미국 진출을 결심한 이유는.

“본토의 아이스하키는 뭐가 다를까 궁금했고 아시아 아이스하키를 잘 모르고 무시하니 부딪쳐보고 싶었다. 준비를 하고 갔는데 쉽지 않았다. 똑 같은 운동이지만 모든 게 달랐다. 이동 거리는 항상 버스로 기본 5시간 이상이 걸렸다. 팀도 너무 많아 아무 정보도 없었다. 또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고만고만하니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 때 ‘세상에 아이스하키를 잘하는 사람이 엄청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2년 뒤면 평창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는데.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올림픽에서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한라, 하이원, 상무 세 팀 선수를 통틀어 우리나라 선수는 7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올림픽에서 1승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적은 인원으로도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1승을 하고 나면 한국 아이스하키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양=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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