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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벗이여, 함께 가주겠나

입력
2015.03.0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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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규정에 간신히 무게를 맞춘 대형 수하물이 늘어섰다. 평상시 반도 채우지 않던 가방에 바리바리 싸 넣은 것은 고추장과 라면에 햇반도 모자라 휴대용 냄비와 각종 인스턴트 식료품까지. 대체 어디를 가기에 이 난리냐고? 오지탐험이라도 하러 간다 말하고 싶지만, 아니다. 어느 작가가 ‘떠나는 자만이 꿈꿀 수 있다’고 했던 인도의 남부 2개 도시로 향하는 길.

공연을 해달라는 초청으로 나서는데 음식 챙기는 일에 더 흥분하는 것을 보니 2년 전 고생한 기억이 아직 생생한가 보다. 물 한잔에 맥없이 쓰러져 산만한 덩치가 희극이 돼버린 놈, 몇 일 병든 닭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끓는 배를 움켜쥐고 비행기에 탔던 녀석들의 무거운 캐리어는 어떻게든 견뎌보겠다는 각오였을 터.

서양식 ‘솔파시스템’과 마찬가지로 7음계를 사용하지만 기원전부터 이를 66개로 쪼개 가청음과 불가청음을 넘나드는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인도. 양손 32개 마디로 64박자를 카운트하며 표정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의미를 담아 보여주는 전통 춤을 만들어 놓은 나라. 종교와 신화로 사람들에게 환상을 품게 만들었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첸나이 소재 인도한국문화원은 현대자동차 현지법인과 소형차 및 부품 등을 생산하는 TVS 모터 및 기업들의 투자와 인도한인회 협력으로 2005년 설립되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가? 영국문화원에서 일하다가 인코센터를 맡은 라띠 자퍼는 적극적으로 한국문화를 탐색했고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10년, 인도에 한국문화를 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성과를 냈다. 그리고 한국 예술에 흥미가 생긴 인도인들도 이제 그녀부터 찾는다.

2년 전 현지 축제와 협력해 현대무용으로 특집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제안한 사람도 라띠다. 프로그램을 맡고 보니 현대무용 볼모지에서 하루를 닷새처럼 사는 듯한 이들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숙제가 머리를 누른다. 결국 이해하기 쉽고 화려하게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풀어내는 작품을 들고 가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4개 무용단과 함께 세상의 악취를 다 모아놓은 재래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지나쳐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건넜다. “지난번 공연 후 한국작품이 온다면 무조건 표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오늘은 10시간을 달려온 작가도 있어요.”

2년 만에 비엔날레 무대에 다시 섰다. 예술감독이 절대로 같은 단체를 반복해 부르지 않는데 “유일하게 연속 초청받은 것을 아느냐” 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스태프들은 감독이 공연 후 출연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에 한 번 더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는 단체사진에 얼굴 비추는 일도 없단다.

그리고 이어진 코친 공연. 고가의 행사용 콘솔을 보고 놀란 것이 무색하게 연결된 조명기는 밧줄에 매달려 하나씩 올라갔다 내려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난한 수작업에 밤은 깊어가는데 구했다던 소품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진작 내려놓았던 마음도 비워버렸다. “화를 내야 말 듣는 흉내라도 낸다”며 소리친 후배 덕에 했던 철썩 같았던 약속은 자고 나니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작은 승합차 지붕에 얹어서 갖고 온 트렁크를, 온다는 기약도 없는 화물차는 포기하고 봉고에 싣는 날이 드디어 왔다.

서남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고 매일 다짐했건만, 인천공항의 찬 공기를 마시는 순간 황금을 덕지덕지 입혀놓은 크리슈나 사원과 담근 물에서 평생 발을 빼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불가촉 천민 도비왈라의 빨래터가 나란히 둥지 튼 인도의 탁한 향이 씻겨나가며 그리움이 솟구친다. 나도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마음속 향수가 발을 다시 이끌어 떠나는 날이 오면 고생하며 정든 벗이여, 함께 가주겠나.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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