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 인근 다리 위를 걷다, 차 탄 괴한 총격받고 숨져
반정부 시위가 추모 집회로 변해… 푸틴 "살인범 꼭 찾아 처벌할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보리스 넴초프(55) 전 부총리의 피살을 두고 국내외에서 ‘정치적 암살’이라는 반발이 거세지면서 러시아 정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수도 모스크바에선 1일 넴초프를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BBC 등 주요 외신은 이날 넴초프 주도로 모스크바에서 열릴 예정이던 반(反)정부 시위가 넴초프의 추모 집회로 대체됐다고 보도했다. 수만명의 추모 집회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2시 모스크바 시내에 모여 넴초프가 피살된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모스트다리까지 행진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수천명이 모여 넴초프 추모 집회를 열었다.
거리로 나온 모스크바 추모 집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넴초프가 피살된 다리에 놓을 국기와 꽃을 손에 들었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집회로 나온 참석자들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그는 러시아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죽었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러시아 내무부에 따르면 넴초프는 27일 오후11시40분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안나 두리츠카야(24)와 모스크바 크렘린 궁 근처 다리를 걸어 건너던 중 차에 탄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흰색 승용차를 타고 접근한 괴한들이 넴초프에게 6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고 이 가운데 4발이 넴초프의 등을 관통했다. 넴초프 가족의 변호사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넴초프에 대한 살해 협박이 있어 당국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넴초프가 피살된 다리에는 그를 추모하는 꽃이 수북이 쌓여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1월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처럼 “우리는 모두 넴초프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눈에 띄었다.
러시아 야권은 푸틴 정권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던 넴초프의 피살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치적 암살이라고 비판했다. 반정부 활동가 마크 갈페린은 “반정부 인사들은 매일 위협을 받는 게 일상이었고 보리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며 “사람들이 우리 활동에 동참하길 두려워하고 있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야당 야블로코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이번 피살의 정치적 책임은 당국과 푸틴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반정부 인사들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푸틴 정권과 갈등의 골이 깊던 세르게이 유센코프 자유 러시아당 의원이 2003년 4월 모스크바 자택에서 가슴에 여러 발의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2006년 10월 모스크바의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반정부 성향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 사건도 유명하다. 그는 러시아군의 인권유린과 고위 관료들의 부패 등 고발성 기사를 주로 써 왔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피살 이유로 정치적 동기 외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개인적 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소행, 정국을 불안정하게 하려는 시도 등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보리스는 최근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공하겠다고 했었다”며 “누군가가 이를 두려워해 그를 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친(親) 푸틴 성향의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은 “러시아 내부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서방의 시도”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비열한 살인범을 처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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