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어깨 위로 내리는 햇살이 지난달과는 확실히 다른 따사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겨우내 잔뜩 웅크리고 있던 탓에 온통 삐걱거리기만 하던 몸의 근육들도 그 기운에 들떠 죄다 아우성이다. 아하! 이 햇살에 가만히 엉덩이를 깔고 방구석에 앉아있는 것은 어째 다시 찾아온 봄에 대한 결례가 아닐까 싶다. 망설일 일이 무엇이겠는가. 어디 나들이라도 나서서 그동안 쌓인 해묵은 어지럼들까지 한번 툭툭 털어내면 기분전환도 되고 좋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살랑살랑 들뜨는 것을 보니 역시 봄은 상큼한 탄력의 바람 같은, 더없이 좋은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이왕 떠날 요량이면 가급적 조금 멀리 낯선 땅 물선 곳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 것이 한결 낫겠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의 인연들과 섞이다보면 방구석에 앉아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귀한 ‘추억거리’에 동공이 열리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 후배 부부와 더불어 아내와 함께 차를 몰아 남도 쪽으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나선 적이 있었다. 강원도의 너른 바다를 끼고 차를 달리며 아직 시린 바닷바람에 콧물을 흘리기도 하고, 맘에 드는 길 아무데나 멈춰 서서 기념사진도 찍는 등 다소 서둘러 나선 우리의 봄나들이는 충분히 즐거웠다. 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던 우리는 어느 순간 안동 ‘하회마을’까지 이르렀다. 늦은 일요일 오후의 하회마을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관광객이 뜸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을 곳곳을 두루 살피며 ‘과거’로의 산책여행까지 마친 우리는 뱃속이 허전하다는 공감의 눈빛을 나눈 후 후배 부부의 적극추천으로 하회마을 안의 한 찜닭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안동에 왔으니 찜닭을 꼭 먹어야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아무리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될 만큼 보존가치가 있는 곳이라 해도 사실 일종의 관광지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음식 맛이 뭐 얼마나 대단할까 싶기는 했다. 그러나 그 집에서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큰소리를 따라 냉큼 따라 나섰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곳은 음식점이라기보다는 하회마을 전통가옥들 중 하나인 집이었다. 집주변을 둘러 마당 앞까지 펼쳐진 비닐막을 걷고 들어가니 연세 지긋한 맘씨 좋아 보이는 주인할머니가 반가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씀으로 부엌을 향하시는데 관절염이 있으신지 걷고 오가시는 모습이 꽤 불편해 보였다. 툇마루 아래에 놓인 평상에 자리 잡고 앉았지만 가만히 앉아 ‘대접’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뭐 좀 도와 드릴까요 여쭈니 “껄껄껄” 웃으며 “어림도 없는 소리 마라”며 타박을 하신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어준 음식이나 잘 먹고 가면 그게 도와주는 거라는 뒷말도 들렸다.
“열아홉에 예로 시집와서 이 집에서만 한 오십년 넘게 살았제! 참 오래도 살았고마!”
경상도 특유의 툭툭 끊기듯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푹 ‘익은’ 정감이 가득했다. 이럴 때 난 어깨춤이 절로 난다. 어린애 마냥 기분이 들뜨고 괜한 어리광으로 분위기를 달구고 싶었다. 더구나 직접 만드셨다는 쌀강정에 입맛이 불끈 솟고 뒤 따라 나온 배추김치, 고들빼기, 깻잎, 멸치볶음에 각종 나물을 비롯한 밑반찬들은 하나같이 ‘감칠맛’이란 무엇인지를 증명시켜 주었다. 이게 웬 떡이냐는 심정으로 우린 주인할머니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농약 한번 안치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사람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든다고, 손님들이 반찬 더 달라고 할 때가 제일 기분 좋고, 지금은 몸이 불편해진 것도 있지만 장사 욕심도 별로 없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등등 주인할머니의 소박한 삶과 인생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 나온 주인 할머니표 ‘안동찜닭’은 우리의 혼을 진작부터 빼앗아 갈 정도로 ‘손맛’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다른 손님들도 이 신나는 이야기 꽃마당에 끼어들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었다.
상을 다 차려낸 뒤 옆에 앉아 마늘을 까면서도 주인할머니의 구수한 인생살이는 계속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잘 자라줘서 고마운데 가끔씩 일부러 와서 일도 많이 도와준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던 할머니는 계속 귀를 기울여주는 우리와의 대화에 마음이 트였는지 얼굴도 모르고 시집왔던 첫날밤 얘기도 꺼내셨다. 긴 세월 함께한 남편이 11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을 못해 지금도 수발을 하고 있다는 말씀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저 방에 계속 누워있는데 조용히 있어 주니께 얼매나 고마운지 몰라아~”
손끝으로 집안을 가리키던 할머니의 눈빛에는 당신 삶에 대한 자부심이 단단하게 묻어있었다. 자리를 떠날 즈음 성함을 여쭈어도 되냐고 말을 건넸다. 다 늙은 사람 이름을 뭐하러 물어보냐고 하시던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답을 주었다.
“허허허~ 나 이름이 이. 순. 용이지! 이순용!”
귀경길 밀리는 차량들 틈에서 나는 ‘순용이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바랐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몇 해가 지나 아이들 손을 잡고 다시 찾아가 찜닭 내달라고 조를지.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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