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상실감은 평생의 상처로 남기 마련이다.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절대군주 데이브 머스테인도 그랬을 거다.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로 선발됐다가 데뷔도 못 해보고 쫓겨나야 했던 비운의 사나이. 알코올과 마약 중독, 난폭한 성격으로 인한 자업자득인 걸 자신도 모르진 않겠지만 스무 살의 철부지에겐 깊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잘못을 만회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자신을 내쫓은 메탈리카의 멤버들을 그는 두고두고 원망했다.
아이슬란드 영화 ‘메탈헤드’(2013)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메가데스의 음반을 꺼내 들었다. 워낙 시끄럽고 과격한 음악이라 프로레슬링 경기나 전쟁 소재 비디오 게임에 가끔 쓰이던 그들의 음악을 영화에서 만난 게 반가워서였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아이슬란드라니.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 상영한 이 영화는 극장 개봉은 못하고 26일부터 IPTV와 VOD 등으로만 관객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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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헤드’는 뜻밖에도 잔잔한 가족영화다. 데스메탈 분장을 한 여자 얼굴의 포스터만 보곤 ‘병맛’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다. 헤비메탈이라는 소재만 아니면 올라퍼 아르날즈(아이슬란드의 인디 음악가)의 음악보다 한 단계 더 우울한 음악이 황량하고 암울한 이 영화의 분위기와 더 어울린다.
주인공은 들판에서 트랙터를 몰다 황당한 사고로 죽은 ‘메탈헤드’ 오빠를 기리며 헤비메탈에 귀의한 소녀 헤라다. 10여 년이 지나 헤라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메탈에만 의지할 뿐 세상과 벽을 쌓고 산다. 상실의 상처는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아물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어 이 가족은 마치 끝나지 않는 장례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콩가루가 된 이 집안에 두 남자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셀틱 프로스트, 베넘 등 헤비메탈 밴드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반전 매력의 신부 아저씨, 그리고 도시에서 돌아와 결혼하자며 소심하게 달려드는 뚱보 동창 누투르가 그들이다.
메가데스의 전성기 명곡 ‘심포니 오브 디스트럭션’(1992)은 엉뚱하게도 헤라와 누투르가 처음 동침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베드신에 강병철과 삼태기의 메들리를 트는 것만큼 엉뚱하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 쥐떼들을 몰고 다녔지 / 우리는 꼭두각시처럼 춤을 춰 / 파멸의 교향곡을 들으며 몸을 흔들지’
‘심포니 오브 디스트럭션’은 헤라가 어둠을 뚫고 진정한 ‘메탈헤드’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 뒤 가족과 무언의 화해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메탈로 분열하던 가족이 메탈로 화합한다는 아이러니가 귀엽다. 헤비메탈이 악마의 음악이니 말살해야 한다는 영화 속 TV 화면의 내용과 달리, 메가데스의 음악이 사회 비판적이고 진보적이라는 걸 의식한 걸까. 영화 속 헤라와 또래인 감독은 열 살 때 아이언 메이든의 ‘넘버 오브 더 비스트’를 산 이래 지금까지 신실한 메탈 신도라고 한다. 메탈 음악이 코미디의 소재로 놀림 당하는 게 싫어서 진지한 영화를 만들었다니 메탈에 대한 애정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메가데스의 음악을 틀어놓고 온 가족이 화해의 춤을 추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상실의 상처를 아물게 해줄 사람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들밖에 없다는 뻔한 결론이 그리 밉지 않다. 머스테인도 새로운 동료들과 메가데스를 만들고 나서 성공하지 않았던가. ‘메탈헤드’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저씨가 된 머스테인이 메탈리카의 제임스 햇필드, 라스 울리히와 한 무대에서 다시 만나 연주하던 감격적인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 메가데스의 ‘Symphony of Destruction’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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