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조항·환경권 신설 등 야당 저항 적은 항목 먼저 개헌
야당 반대·부정적 국민 여론 많아 아베 시나리오 진행 여부는 미지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중인 평화헌법 개정의 구체적 시나리오가 드러났다. 비상사태 조항, 환경권 신설 등 진입 장벽이 낮은 내용으로 한차례 개헌을 추진한 뒤, 9조 개정을 본격 진행하는 2단계 전략으로 개헌 시나리오를 완성하겠다는 복안이다.
27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은 26일 지난해 중의원선거 이후 처음으로 당 헌법개정추진본부 회의를 갖고 개헌 논의 재가동을 선언했다. 후나다 하지메(船田元) 본부장은 이 자리서 “헌법개정을 향한 환경정비가 마련된 만큼, 이번 국회부터 개헌 내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의 알맹이는 ‘헌법 전문(前文)과 9조의 개정’이라는 주장을 펼쳐왔지만 최근 전략을 수정, 2단계 개헌론을 강조하고 있다. 야당과 국민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내용으로 시험 개헌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대규모 재해나 유사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긴급사태조항 ▦차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재정규율조항 ▦정부나 국민의 환경안보에 책임을 결정하는 환경권 등의 신설을 내세우며 개헌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긴급사태조항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2005년 제안한 개헌안에 담긴 내용이고, 환경권은 연립여당 공명당이 2014년 중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야당의 저항이 적은 이들 항목을 내걸고 개헌을 추진하면, 중ㆍ참의원 3분의 2 이상 개헌발의라는 진입 장벽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헌 분위기 조성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과 다른 개헌론을 가진 당내 온건파로 알려진 후나다 본부장을 기용한 것은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민주당 간사장과의 친분을 고려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내 생각만으로는 오히려 개헌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개헌 실현에 관해 타협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1단계 개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헌법 9조 개정 등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후나다 본부장은 “1단계가 마무리 되면 속력을 높여 개헌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자민당은 2012년 ▦헌법 9조는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새로운 국방군을 보유한다 ▦(헌법) 전문은 전면개정한다 ▦일왕은 (국가) 원수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 초안을 만들었다.
아베 총리 보좌관인 이소자키 요스케(?崎陽輔) 자민당 헌법개정 추진본부 사무국장은 최근 열린 당회의에서 “국민들이 헌법 개정의 맛을 한번 보고 나면 이후 개헌에 대한 저항감은 낮아질 것”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개헌 시나리오가 예정대로 진행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공명당은 환경권과 알권리 등에 대해 헌법의 일부 조항을 변경하는 개헌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헌법9조의 개정에는 거부감이 크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도 “아베 총리 하에서 헌법을 논의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며 개헌 논의자체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우익성향의 유신당 간부조차 “통치기구 개혁을 중심으로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9조 개정에는 부정적이다.
국민 여론도 현재로서는 반대의견이 우세하다. 아사히는 “지난해 2, 3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헌법 9조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64%를 차지하는 등 개헌을 공론화할 여건이 마련돼있지 않다”며 “아베 총리 자신도 여론의 반대가 강한 항목에 발을 내디디지 못하는 것도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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