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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걷기가 길을 만든다

입력
2015.02.2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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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강좌 열어도 참가자 없어

철학 고전 강독 1년 이상 걸려

걷다 보면 새 길 만들어질 것

공동체에서 2년 동안 ‘맹자집주’를 읽어온 공부 모임이 있다. 지난해 말 책거리를 한 이들이 다소 촌스런 이름의 새 모임을 만들었다. 호연회,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어 차례 단합대회를 하면서 호연지기를 외치던 이들이 친목만 도모할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하자며 의기투합했다. 공동체에서 반드시 개설해야 하나 사람이 적게 올 것이 분명한, 그래서 공동체와 지도하는 학자 모두 어려울 수밖에 없는 강좌를 돕기 위해 일종의 석좌 기금을 만든 것이다.

이 기금으로 개설하는 첫 강좌가 ‘노장’ 강좌다. 학자의 지도를 받으며 ‘도덕경’ 원문을 읽는 것에 더해 웬만하면 원문을 암송해 보자는 강좌다. 4, 5개월 정도로 예정된 ‘도덕경’ 강의가 끝나면 이보다 양이 훨씬 더 많고 시간도 더 걸리는 ‘장자’ 강의로 넘어간다. 석좌 기금의 지원을 받는 강좌의 이름을 아예 ‘노장’ 강좌라고 한 까닭이다.

동양철학에서 노장은 유교, 불교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분야지만 2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이 강좌의 개강은 몇 차례 연기됐다. 참여 희망자를 모으지 못한 탓이다. 기왕 참여자가 2, 3명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 강좌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강좌가 많아지면 공동체는 물론이고 이를 이끄는 학자도 힘들어진다. 조금 더 사람이 많은 강좌에서 이런 강좌를 지원하지만 공동체의 규모가 영세하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호연회의 석좌 기금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다음 달이면 공동체가 출범한 지 만 4년이다. 대학에서 포기한 인문학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돌아보면, 아득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가장 힘든 건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다. 좋은 학자를 삼고초려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공부할 사람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해당 분야 최고의 학자가 이끄는 강좌, 세미나인데도 강의실은 차지 않았다. 강좌가 신문에 나고 그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나 달려도 참여자는 서너 명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하는데 통장 잔고는 비어있기 일쑤였다.

기적처럼 위기를 넘겨 왔지만 줄타기는 여전하다. 뭔가 되는 듯해서 살짝 마음을 놓으면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 든다. 유행의 흐름을 타는 강좌는 그나마 낫지만 본격 공부 모임을 유지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긴 시간이 걸리는 철학 고전의 강독이 특히 그렇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아도르노, 벤야민, 지젝의 저작처럼 두께와 난해함을 동시에 갖춘 책을 읽으려면 한 해 이상 시간이 걸린다. ‘논어집주’ ‘맹자집주’ ‘장자’ ‘주역’ ‘사기’ 등 대다수 동양 고전 원전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람들이 찾기 쉬운 강좌로 커리큘럼을 재구성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대학조차 인문학을 포기한 마당에 그 대안을 생각하는 공동체마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초심 끌어안고 갈 길 가는 것이다.

요즘 자주 걷는다. 평일에는 공동체 주변을 산책하지만 휴일에는 둘레길 같은 곳을 걷기도 한다. 일 보러 갈 때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간다. 여유 있을 땐 집에서 공동체에까지 3시간이나 걸어서 가기도 한다. 도시 주변의 낮은 산과 개울을 중심으로 산책로도 매우 잘 정비돼 있다. 이런 산길과 천변 산책로, 도시의 골목길을 이어 걷다 보면 먼 길도 피로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걷다 보면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땐 결코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인다. 겨우내 얼어있던 개울에 청둥오리 떼가 날아든 것을 본 것도 걸으면서였다. 서울의 밤거리가 몽환적으로 아름답다는 것도 안개비 내리는 천변을 걸으면서 처음 깨달았다. 장 자크 루소가 걷기에 대한 명언을 남긴 것도 북한산 둘레길에서 비로소 알게 된 일이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걸으면서 가능한 게 어찌 명상 뿐일까. “길은 없다. 걷기가 길을 만든다.” 역시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난 명언이다. 그래, 쉽잖아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새 길이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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