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惜敗率制) 등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방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한국정치의 오랜 병폐로 여겨져 온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사표(死票)를 막는 효과를 가늠하게 하는 제안이다. 본보가 신년기획 ‘선거제도 혁신 올해가 골든 타임’을 통해 제시한 다양한 선거제도 혁신 방안과도 일맥상통한다. 국회가 조속히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적극적 검토에 나서는 계기로 삼을 만하다.
선관위 제안의 핵심인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적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르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배정을 ▲서울 ▲인천ㆍ경기ㆍ강원 ▲부산ㆍ울산ㆍ경남 ▲대구ㆍ경북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대전ㆍ세종ㆍ충북ㆍ충남 등 6개 권역별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르도록 하는 방식이다. 19대 총선 권역별 득표에 단순 적용하면 새누리당이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 권역에서 비례대표 1석을, 새정치연합이 부산ㆍ울산ㆍ경남 권역에서 비례대표 4석을 얻은 결과가 된다. 역대 선거에서 거듭된 특정 정당의 지역별 싹쓸이 현상을 일부 배제할 수 있다는 효과가 눈에 띈다.
석패율제 도입은 사표를 줄여 유권자의 뜻을 존중하게 되는 효과와 함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정당마다 2명까지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자를 그 지역구가 속한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로도 내세워, 지역구 낙선 후보자 가운데 ‘상대 득표율(득표수/해당 지역구 후보자 평균 득표율)’이 가장 높은 1명을 비례대표에 당선시키는 제도다. 19대 총선 당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를 득표한 김부겸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 등록했다고 가정하면, 이한구 의원에게 패해 낙선하고서도 권역별 비례대표로는 당선될 수 있었다. 대신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입후보자의 득표가 지역구 유효투표의 3% 이상이어야 하고,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가 해당 권역 지역구 당선자의 20% 미만일 경우로 제한했다. 영ㆍ호남 지역처럼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만연한 권역을 우선 겨냥한 셈이다.
선관위 제안은 구체적 비례대표 배정방식이 복잡해 일반 유권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이 지역주의와 사표를 막을 방안으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ㆍ대 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주장한 것과 달리, 유권자에게 익숙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엇비슷한 효과를 고려한 결과라고 눈감아 줄 만하다.
문제는 선거법 개정의 칼자루를 쥔 정치권의 자세다. 선관위는 2011년에도 석패율제 도입 등을 제안했으나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에 좌초한 바 있다. 의원 정수(300명)를 그대로 두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정수를 2대1로 하자는 제안도 담겨있어 의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가 선관위 제안의 핵심내용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는 야당의 반응이 보다 적극적이지만, 당내 의견이 일치된 결과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어차피 대대적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한 만큼 정치권과 의원 각자가 더는 눈앞의 이해 타산에 얽매일 수 없다. 국회는 선관위 제안을 참고로 본격적 선거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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