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몰상식 행태 불만 증폭, 중앙정부에 관광객 수 제한 건의
전 세계가 씀씀이 큰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유독 홍콩은 중국 본토사람 방문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도심을 점령한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 내 반(反)중국 정서가 점점 강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을 방문하는 본토 관광객의 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내달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중앙 정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25일 보도했다.
지난 2003년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등 중국 주요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별도 비자 없이 홍콩을 방문할 수 있는 ‘홍콩자유여행’ 정책이 도입된 뒤 본토 중국인의 홍콩 관광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본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무단 횡단, 노상 방뇨, 분유와 기저귀 사재기, 원정 출산 급증 등 중국 관광객의 몰상식한 행태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중국인 방문으로 홍콩 물가가 오르면서 홍콩인의 삶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 급기야 홍콩의 정체성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런 불만이 쌓이며 최근 홍콩에선 주말마다 반(反)본토관광객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대륙 관광객을 향해 “홍콩을 떠나라”고 고함을 지르며 모욕적인 언사까지 퍼부을 정도다. 렁 장관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홍콩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다”며 중국 본토인의 홍콩자유여행을 엄격하게 통제할 뜻을 내비쳤다.
이런 홍콩의 반중(反中) 분위기에 중국인이 유쾌할 리 없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날 사설에서 “홍콩자유여행 정책은 2003년 홍콩 경제가 어려울 때 홍콩이 중앙 정부에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이후 홍콩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일본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의 사재기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국 대륙 본토와 홍콩간의 관계가 냉각되면서 이번 춘제(春節ㆍ중국의 설) 연휴 초반 6일간 홍콩 방문 본토인은 지난해 춘제 같은 기간에 비해 1% 감소한 84만2,124명에 그쳤다. 춘제 기간 홍콩 방문 본토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처음이다.
홍콩 옆 마카오도 본토 관광객이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카오 정부도 최근 “중국인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중앙 정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인구 62만여명의 마카오를 방문한 중국 본토 관광객은 2,500만명이 넘었다.
쏟아져 나오는 중국 관광객들로 인해 각종 잡음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인 해외 관광객 증가세는 점점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올 춘제 연휴 1주일간 해외 여행을 떠난 중국인의 수는 5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춘제 기간보다 10% 늘어난 것이다. 차이나데일리는 “춘제 연휴를 맞아 해외로 나가 쇼핑을 즐기는 부자 중국인이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이 기간 해외에서 쓴 돈은 220억달러(약 24조2,000억원) 이상일 것이란 게 업계 추산이다. 또 춘제 기간 해외로 간 여행객의 수가 중국 국내 여행객 수를 넘어선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춘제 기간 중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해외 관광지는 태국이었으며, 일본과 미국은 전년 대비 200%나 상승했다. 특히 이 기간 일본을 여행한 중국인 관광객은 45만여명으로, 이들은 9억4,100만달러(약 1조300억원)의 경비를 사용했다. 위안화 강세와 각국의 중국인 관광 비자 완화 정책, 중국인의 해외여행 수요 증가 등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편 지난 한해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은 1억명(연인원)을 넘었다고 신화망이 전했다. 이들이 해외에서 쓴 돈은 1,648억달러(약 181조3,000억원)에 달했다. 프랑스 사치품 판매액의 35%가 중국인 관광객의 지갑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의 한 명품 백화점은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늘자 매장 식당가에 중식당을 새로 설치하기도 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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