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물학Ⅱ-제작자들의 도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디자인 기획전 ‘사물학Ⅱ-제작자들의 도시’는 산업의 영역에서 첨단기술과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된 수공업을 키워드로 삼는다. 전시에 참여한 15개팀이 제작의 과정 자체를 재조명함으로써 대량생산 체제에서 잊혀진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다.
영화 ‘철의 꿈’으로 영화계와 미술계에서 두루 찬사를 받은 박경근 감독은 다시 마음의 고향인 청계천 금속공방을 방문했다. 그는 2010년작 ‘청계천 메들리’를 재구성해 ‘청계천 메들리 아시바’를 내놓았다. 건축현장에서 사용되는 철제 비계(아시바)로 구조물을 만들어 영사막을 달고 그 위에 영상작품 ‘청계천 메들리’를 비치게 했다. ‘철의 꿈’이 포항제철소와 울산 조선소의 공정을 영상에 담아 철에 신성성을 부여했다면 ‘청계천 메들리 아시바’에서 철은 그것을 직접 만지고 물건을 만들어냈던‘아버지 세대’와 동일시된다. 박 감독은 누구보다 강하게 한국 사회를 지탱해 왔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서서히 녹슬고 깨져 가는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5일 개봉한 다큐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의 주인공 송호준은 그가 쏘아올린 인공위성 제작 기술을 공유한다. 숫자가 쓰여진 노란 종이를 붙인 채 늘어선 각 부품은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다. 전시장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면 송호준이 어떻게 그 부품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구입했는지 볼 수 있다. 송호준은 “하나의 운동으로서 수공업 제작이 제작된 물건의 부가가치나 동원된 기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디자이너 토마스 트웨이츠와 뉴욕에서 컴퓨터 제작과정을 가르치는 ‘시적 연산학교’를 운영 중인 최태윤 역시 결과물이 어설프더라도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를 중시한다. 트웨이츠는 자신이 지닌 화학 지식을 동원해 손수 토스터를 만드는 ‘토스터 프로젝트’를 전시했다. 구리가 필요하면 광산에 가서 구리를 캤다. “어느 날 빈 손으로 낯선 행성에 떨어졌을 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자문에서 시작해 토스터를 완성해 가는 갖가지 시행착오가 영상에 담겼다. 작은 컴퓨터를 직접 만든 최태윤은 “스마트폰 같은 제품은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묶어 판매한다”며 “우리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개인화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컴퓨터를 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손주영 학예연구관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사이에 적극적인 협업이 이뤄졌고 제작과정 전부를 공유했다”고 소개했다. 그 말대로 장태훈 김동훈 김도현이 팀을 이룬 ‘제로랩’은 전시에 필요한 집기를 직접 제작하고, 작품 제작 방법론을 관객들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책과 복사기를 배치해 뒀다. 전시는 관객들이 제작과정을 이해하고 직접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6월 28일까지.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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