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부와 명예를 주체하지 못하던 때였다. 조락(凋落)을 피하지 못했다. 한물갔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러다 영영 잊힐까 조바심이 난다. 호시절을 다시 누리고 싶다. 그러나 예순을 앞둔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영화 ‘버드맨’은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를 빗대 중년이 맞닥뜨릴 만한 고달픈 현실을 스크린에 펼친다.
한 때 버드맨이라는 슈퍼히어로로 스크린을 누볐던 톰슨(마이클 키튼)이 카메라 중심에 선다. 할리우드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그는 오랜 꿈이었던 연극 무대에서 재기를 노린다. 사재를 털어 레이몬드 커버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려 하나 곳곳에 사고뭉치투성이다. 새로 들어온 주연배우(에드워드 노튼)는 제멋대로고 배우 마약중독자였던 딸(엠마 스톤)은 아버지의 재기 노력에 냉소를 보내기 일쑤다. 뉴욕타임스의 연극평론가는 톰슨의 연극을 보기도 전에 “파괴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톰슨을 자극하고 힘을 주는 이는 그의 또 다른 자아인 버드맨뿐이다. 영화는 톰슨의 악전고투를 통해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강박을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톰슨의 의지를 지렛대로 삶의 무게에 눌린 희망을 들춘다.
다이아몬드 같은 수작이다. 반짝이는 여러 결들이 모여 아름다움을 뿜는다. 압권은 수려한 촬영술이다. 카메라는 119분 동안 끊김 없이 공간과 시간을 주유하며 톰슨의 판타지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전한다. 배우의 주변을 빙빙 돌다가 극장의 좁은 통로를 통과하고 뉴욕 타임스퀘어를 횡단하기도 한다. 여러 번 나눠 촬영하고 절묘하게 이어 붙여진 화면이 단 한 번의 촬영만으로 이뤄진 듯한 환상을 자아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각자 빛나면서도 빼어난 앙상블을 이룬다. 키튼의 연기가 유독 빛을 발한다. 1990년대 ‘배트맨’ 시리즈의 배트맨으로 스타가 됐다가 오래도록 침묵했던 그의 연기 이력이 톰슨의 고통과 포개지며 묘한 공명을 이룬다.
심각한 내용을 다루나 종종 웃음을 부른다. 딸의 연애 장면을 목격하고 속을 끓이던 톰슨이 담배 한대 피워 물었다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장면은 포복절도 수준이다. 욕설을 곁들인 대사들은 대체로 짧고 너저분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는다.
22일 열린 제87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버드맨’과 작품상 등을 다툰 ‘보이후드’가 억세게 운이 나쁠 뿐이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3월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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