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명한 애연가는 계곡(谿谷) 장유(張維ㆍ1587~1638)와 정조(正祖ㆍ재위 1752~1800)였다. 장유는 ‘담배의 효능을 칭송한다(稱頌南草之效能)’는 글에서 담배가 “배고플 때는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때는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한다”고 높였다. 정조도 자신의 문집인 ‘일득록(日得錄)’ ‘훈어(訓語)’에서 “담배가 사람에게 유익한 점을 말하면, 더울 때는 더위를 씻어 주고, 추울 때는 추위를 막아 준다”고 극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밥 먹은 뒤에는 담배에 힘입어 음식을 소화시키고, 변을 볼 때는 이것으로 악취를 쫓고,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이것을 피우면 잠이 오며, 심지어는 시나 문장을 지을 때나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 그리고 고요히 정좌할 때 등의 경우에도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은 점이 없다.”
정조는 “옛 사람 중에서는 오직 장신풍(張新?)만 이러한 담배의 맛을 조금 알았다”고 평가했는데, 신풍이란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 장유를 뜻한다. 담배를 칭송하게 된 것은 일각에서 약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성종의 삼남 안양군(安陽君)의 현손(玄孫)인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ㆍ1579~1651)는 ‘담배(南草)’라는 시에서 “비록 불사약은 아니지만/ 먹으면 풍연(風涎)을 다스릴 수 있네(雖非不死藥/ 服之治風涎)”라고 읊었다. 풍연이란 육연(六涎)의 하나로 풍기(風氣)가 위로 올라 가래가 성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졸도하거나 인사불성이 되는 병을 뜻한다.
담배가 약이라는 이런 주장에 대해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ㆍ1741~1793)는 ‘사소절(士小節)’에서 “기연자(嗜烟者ㆍ담배를 즐기는 자)들은 걸핏하면 충담(蟲痰)을 없앤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니 담배를 즐겨 피우는 자도 충담으로 고생한다”고 반대했다. 정조와 동시대 사람이면서도 담배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이가 무명자(無名子) 윤기(尹?ㆍ1741~1826)였다. 윤기는 86세 때인 순조 26년(1826) 금주령이 내리자 이를 비판하는 ‘금주령(酒禁)’이란 글을 썼는데 거기서 “술은 모든 약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약(酒者 百藥之長)”이라고 옹호하면서 담배는 극도로 비판했다.
“반드시 금할 수 없으면서도 금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 술이다. 반드시 금할 수 있으면서도 금하기 지극히 쉬운 것이 남초(南草)다…백해무익(百害無益)한데다, 큰돈(百費)이 들지만 쓸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온 세상 남녀노소와 귀하고 천함과 현명하고 미련한 것을 불문하고 편벽스럽게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다.”(‘무명자집(無名子集) 14책’)
윤기는 “나라 안에 명을 내려서 지금 남아 있는 담배는 모두 피우고 다시는 담배를 심거나 흡연도구를 만들지 말라”는 법을 반포하자고 주장하면서 “자신 한 사람의 말이 어찌 온 조정의 풍조를 깰 수 있겠는가”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윤기가 담배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담배 때문에 어른과 어린아이와 귀하고 천한 자의 순서가 다 무너졌다(論長幼尊卑之壞於南草)’는 글에서 “지금 세상에서 어른과 어린아이를 구별하는 윤리와 귀하고 천한 자를 구별하는 순서가 땅을 쓴 듯 다 없어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담배에 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윤기는 심지어 자제가 부형 곁에서, 노비가 주인 앞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고 비판하면서 “세도(世道)가 일개 하찮은 풀 때문에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한탄했다. 어른들 앞에서 술은 마셔도 담배는 삼가는 현재의 풍습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윤기가 담배를 피려면 든다고 한 ‘큰돈’은 얼마 정도였까. 홍대용(洪大容ㆍ1731~1783)은 ‘담헌서(湛軒書)’의 ‘주해수용 내편 상(籌解需用內編 上)’에서 여러 수학 계산법을 위해 다양한 물건 값을 제시하고 있는데,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담배 한 근 값을 16냥(兩)이라고 예시하고 있다. 홍대용은 한 냥을 쌀 2말 5되라고 했으니 담배 한 근 값은 쌀 마흔 말에 달하는 고가였다. 그런데 장유는 ‘담배가 앞으로 중국의 차처럼 세상에서 쓰일 것이다(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라는 글에서 중국에 차가 들어온 후 생활필수품이 되자 “국가에서 전매(專賣)하여 이익을 거둬들이기에 이르렀다”면서 나라에서 담배로 이익을 남길 것이라고 정확히 예견했다.
담뱃값 인상이 사실상 서민증세라는 반발이 거세지자 저가담배 판매 방안을 꺼냈다가 여론의 질타가 또 쏟아지고 있다. 꼼수 서민증세의 문제점을 꼼수 처방으로 때우려다 탈이 난 셈이다. 옛 선비들이 이를 봤다면 “나라의 체모가 말이 아니다”라고 한탄하면서 당당한 국사처리를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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