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유럽에 마이너스 금리가 일상화되고 있다.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에선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이미 마이너스로 내려앉았고 상당수 국가의 국채와 일부 회사채까지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란 쉽게 말해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빌려주면서 오히려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금리(金利)란 것이 본디 돈(金)에 붙는 이익(利)을 뜻하는 단어임에 비춰보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런 비정상이 일상화된 건 지금 유럽의 경제 시스템이 정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작년 말부터 현실화된 유럽 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다. 디플레이션은 지속적으로 물건의 가치(물가)가 하락하는 현상. 돈의 값(금리)보다 물가가 앞으로 더 크게 하락할 걸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다면 당장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빌려줘도 나중엔 실질금리(시중금리-물가상승률)가 플러스가 돼 이익을 볼 수 있을 거란 계산이 가능해진다. 역사적으로 디플레 환경에선 투자금이 부동산보다 현금으로 옮겨갔는데,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과 주식에서 현금과 국채로 투자금이 대거 이동한 바 있다. 지금 유럽도 그런 현상의 초입에 접어든 셈이다.
둘째, 통화의 가치가 급변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대규모 양적완화로 유로화의 가치를 떨어뜨리자 돈은 유로화를 쓰지 않는 스위스 등 주변국으로 탈출했고 최근 그 나라들의 통화가치가 대폭 오르고 있다. 이 나라들이 몰려오는 돈을 밀어내고자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렸지만 돈은 마이너스 금리로 손해 보는 것보다 환율 차이(환차익)로 얻는 이익이 더 클 걸로 보고 더욱 몰려든다.
또 하나, 금리가 앞으로 더 떨어질 거라 본다면 설사 눈 앞의 금리가 마이너스라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1만원을 빌려줄 때 100원을 사용료(금리 -1%)로 내는 것보다 200원(-2%)을 사용료로 내는 상황이 더 손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100원의 사용료가 매겨진 채권이 더 인기일 수밖에 없다. 손익 계산의 귀신(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요즘 유럽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아직은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우리에게도 이미 마이너스 금리는 바짝 다가와 있다. 올해 적지 않은 은행 예금자에게 실질금리는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예상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1.9%. 현재 은행 예금 중 2%를 갓 넘는 상품들은 물가상승률과 세금(이자의 15.4%)을 감안하면 원금 외에 남는 돈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예금의 안전성을 포기한다 한들 ‘플러스’를 얻을 확률은 높지 않다. 투자상품 중 가장 대중적인 국내 주식형 펀드의 작년 평균 수익률은 ?5.36%였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재테크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이 아니다. 뭔가 도박(원금손실 위험)을 걸고, 그나마 운까지 따라야 마이너스를 면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수면 위(플러스 금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잠시라도 숨쉴 공간을 찾아 서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런 비정상도 언젠가는 다시 정상을 되찾을 것이다. 유럽이 이대로 주저앉지 않는 바에야 금융시장은 결국 발 딛고 선 경제의 기초체력을 닮아 가기 때문이다. 눈 앞의 마이너스 금리보다 오히려 더 두려운 건 우리가 앞둔 ‘마이너스 미래’다.
온 국민이 노후를 저당 잡힌 국민연금은 현재 추세라면 2060년쯤 고갈이 예고돼 있다. 지금은 3%대 중반인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은 2060년대에 0%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어려울 땐 빚으로라도 버텨야 하지만 국가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국채발행으로 재정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는 2033년에 꽉 찰 것이란 계산도 나와 있다. 이 모든 것을 좌우할 한국의 인구는 2017년 생산가능인구를 시작으로 갈수록 쪼그라들 처지다. 어느 것 하나 지금대로라면 피하기 어려운 마이너스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당장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는 강 건너에 일어난 불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을 구경하는 사이, 우리 발 밑에선 더 거대한 마이너스 미래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돈을 잃지 않으려면 재테크에 나서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이너스를 피할 ‘미래테크’에 나서야 할 때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돈보다 큰 미래를 잃을 게 뻔하므로.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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