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을 인상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정치권에서 저가 담배 도입을 검토하자는 논의가 일었다. 담뱃값 인상에 대해 노인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불만의 소리가 커지자 보완책으로 거론됐다고 한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기존 담배보다 싼 저가 담배를 검토해 볼 것을 당 정책위에 지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도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담뱃세 인상이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추가과세가 되고 있다”며 “봉초 담배(직접 말아서 피우는 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감면하면 저소득층도 저렴하게 담배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설 연휴를 전후해 경로당 등 민생현장에서 수렴한 의견이 ‘저가 담배’ 논의의 배경이라고 한다. “기초연금 20만원 쥐어주고 담뱃값을 인상해서 도로 다 빼앗아 갔다” “담뱃값 때문에 박근혜 정부를 지지할 수 없다”는 등의 불만을 여당이 간과하기는 어렵다. 야당 또한 여당이 이런 논의를 주도하도록 내버려 둘 처지는 아니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 차원에서 저가 담배 도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저가 담배 유통이 노인과 저소득층의 건강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의료 비용을 끌어올릴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정치권의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정부가 언제까지 입장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저가 담배 논의가 지금까지 정부가 내세워 온 담뱃값 인상의 기본논리를 누더기로 만든다는 점이다.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설명과는 달리 결국 세수 확보를 위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우연이 아니다. 일단 세수 확보는 이뤄졌으니 노인과 저소득층의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잇따른 비판에 유 원내대표는 “내부 검토 차원이지 아직 밖으로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아직 따져 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정치권의 논의가 시작되고, 특히 그것이 유권자의 표심을 살 수 있는 시혜적 조치일 경우 결국은 현실화했던 경험에 비추어 이번 논의가 완전히 없던 일이 됐다고는 보기 힘들다.
농촌 지역이나 도시 저소득층 고령자 가운데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를 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반면 경제적 부담만 늘어난 사람들이 적잖다. 진정으로 이들의 부담을 줄여줄 생각이라면,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담배보다 건강 위해성이 큰 ‘봉초 담배’를 만들자는 식의 발상이어서는 안 된다. 싸구려 담배를 따로 만드는 대신 노인과 저소득층의 담뱃값 부담을 줄일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정치권이 설익은 정책을 띄우기에 앞서 실효성과 부작용 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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