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내국인 해외여행 러시, 불황 속 엄두도 못 냈던 제품들
"이참에 구입" 향수·가방 불티, 요우커까지 몰리며 종일 북새통
“콰이 파이 뚜웨이 바!”(빨리 빨리 줄 서!)
1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 면세점 전용 엘리베이터 앞.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잔뜩 몰려온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遊客)들이 길게 줄지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9층 화장품 코너에서 내린 중국인 리훼이(36)씨는 곧장 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 매장으로 직진해 5분 만에 스킨세트, 마스크 팩 등 총 50만원 어치를 단번에 구입했다.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중국 최대 명절 춘절(18일~24일)을 맞아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그야말로 요우커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수입 브랜드는 물론 한류스타들의 광고를 앞세운 국내 브랜드 매장 직원들은 요우커가 구입한 제품들을 쉴새 없이 쇼핑백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관광공사는 춘절 기간 12만 6,000명의 중국인이 방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면세점들도 여기 맞춰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롯데면세점은 곳곳에 각종 할인, 판촉 행사를 전하는 중국어 안내판이 빼곡하게 들어차 마치 중국 백화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올해 춘절은 지난해 보다 중국인 매출이 15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중국인 대상 경품 규모를 지난해보다 2배 키웠다”고 말했다. 서울 신라면세점도 춘절을 일주일 앞둔 9∼15일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정도 늘었다.
비단 요우커들 뿐만이 아니다. 내국인들도 요우커들 못지 않게 면세점을 대거 찾았다. 2011년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최장 황금 연휴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들이 늘면서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들은 ‘들어와 쓰는’ 요우커 뿐 아니라 ‘나가며 쓰는’ 내국인 소비자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설 연휴 기간 인천국제공항 이용객은 역대 최다인 78만 6,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가운데 면세점 만은 설 연휴 기간 유례없는 불황 무풍지대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소비성향(가계의 소득 대비 소비 비율)이 72.9%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저수준으로 추락할 만큼 소비 심리가 위축됐지만 오히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에 과감히 소비하는 집중 소비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이번 설 연휴를 앞둔 면세점 풍경이다. 평일이지만 설 연휴에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면세점을 찾은 국내 소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수입 가방 매장 앞에서 만난 회사원 이 모(33)씨는 “평소 가방이나 향수 등 유명 브랜드의 고가 제품은 구입을 미뤘다가 휴가 때 면세점에서 한꺼번에 쇼핑을 하는 편”이라며 “수입브랜드 제품을 저렴하게 사는 ‘면세 찬스’를 이용하는 게 외국 여행 이상으로 기분 좋다”고 덧붙였다. 주부 한정애(55)씨도 “외국에 나가는 김에 평소에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던 고가 화장품을 사러 나왔다“며 웃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설 연휴 기간 면세점 호황은 요우커의 영향력 못지 않게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패턴도 한몫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비 심리가 최악으로 위축됐기 때문에 해외직구나 면세점 이용 등 상대적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활용하는 소비 성향이 확산되고 있다”며 “고도 성장 시기를 지나 재화의 수요는 약해지는 반면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면세점 구매를 부추기는 요소”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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