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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이후드의 시간

입력
2015.02.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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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효율성이란 ‘들인 노력과 결과의 비율이 높은 특성’이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해 효율성이 높음을 좋게 치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를 보는 것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반대로 끊임없이 한계를 설정하고 인식하는 상태에서 가능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은 변변찮은 결과물도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고, 따라서 어떤 분야에서든 가장 뛰어난 결과물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대해서 처음부터 효율성을 가장 높은 목표와 가치에 두는 것은 세계관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한국은 이 효율성의 세계관과 불화하는 사회다. 끝없이 이어지는 학교수업, 방과후 자율학습과 학원으로 이루어지는 학창시절을 생각해보자. 군대에 간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지루한 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직장인들의 노동시간도 비현실적으로 길다. 물론 이런 뼈를 깎는 노력 덕에 한국은 꽤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200의 노력을 들여서 100의 결과를 뽑아내고, 그것이 국제 평균치보다 조금 높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나 좋은 것인가? 그냥 50의 노력을 들여서 40정도만 해내는 게 낫지 않나?

한식을 요리하다 보면, 끝도 없이 손이 가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김치와 같은 음식을 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놓고 나면 좋다. 사서 먹는 것보다 안심이 되고 맛도 있다. 하지만 좀 괜찮은 음식을 먹겠다고 지나치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닌가. 그냥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김치를 사먹는 게 나은 게 아닐까. 물론 요즘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치를 사먹는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예이고, 여전히 많은 일들을 무한정의 시간과 손길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순히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뭐든지 많이, 끝없이 하는 것을 가장 좋고 옳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계관이 모든 것에 한계를 설정하고 또 인정한 상태에서 최대치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이런 무한정한 투입의 세계관에는 한계가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죽는다. 실제로 한창 일에 바쁜 직장인들이 과로사하거나 돌연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 없는’ 이 세계관은 이런 ‘한계’를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 수록 죽음에 대해서 운명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죽거나 실패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아 성취에 이른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사람이 살아남고 어떤 사람이 죽는 것일까? 그것은 정해져 있는가? 그저 운에 따른 것일까? 내가 죽게 될 가능성은 없는 걸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차라리 역술인이나 종교에 의지한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투입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언뜻 보면 이 무한정의 세계관에 경배를 표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 긴 세월을 난도질하여 두 시간 남짓으로 잘라낸 무자비한 효율성에 그 놀라움이 있다. 관객들은 단 몇 시간을 들여서 한 아이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그 효율적인 압축은 깊이나 성숙과는 별 관련이 없다. 많은 세월과 사건을 겪은 주인공의 어머니는, 놀라울 정도로 처음과 거의 변한 게 없다. 이제 대학에 입학한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고, 인생에 서툴다. 단지 시간만이 흐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완벽하게 설계된 아이스크림 공장 같다. 매일매일 수 만개의 맛있는 아이스크림들이 찍혀 나오지만, 생긴 것도 맛도 똑같다. 절대로 달라지지 않으며, 그래야 마땅하다. 미국이 낳은 위대한 비상업파 인디 감독은 그렇게 자국의 훌륭한 제조업 전통에 찬사를 보낸다. 관객들은 감동한다. 한국인들이 과다한 노동으로 이루어진 피곤한 일상을 놀랍도록 노동집약적인 아이돌의 무대를 통해 치유받듯이.

김사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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