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체제 인사로 지목돼 영화 연출·출국 금지
택시에 카메라 숨기고 촬영한 작품… 조카 사에이디가 대리 수상
소녀는 트로피를 받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오른 손으로 트로피를 치켜들며 환한 미소를 보였으나 소감을 말하려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희열의 눈물은 아니었다. 설움과 감격이 만들어낸 눈물이었다. 소녀는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 “너무나 감동해 말을 할 수 없다”라고. 프랑스 배우 오드리 토투와 봉준호 감독 등 무대 한 켠에 서있던 심사위원들이 위로하자 소녀의 구겨진 얼굴이 좀 펴졌다. 14일 오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65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의 황금곰상(최고상) 시상식은 여느 해와 다른 모습이었다. 뜨거운 환호보다 위로와 용기를 보내는 박수가 쏟아졌다. 탄압과 억압을 이겨낸 표현의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채였다.
올해 황금곰상의 영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이란 영화 ‘택시’에 돌아갔다. 하지만 파나히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의 최고상을 거머쥐고도 시상식 참여는커녕 베를린 땅을 밟지도 못했다. 그는 이란 정부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지목돼 영화 연출과 출국이 금지돼 있다. 이날 그를 대신해 황금곰상을 받아 든 소녀 하나 사에이디는 파나히 감독의 조카이자 ‘택시’ 출연자 중 한 명이다.
‘택시’는 파나히 감독이 연출금지 명령을 받은 이후 만든 세 번째 영화다. 파나히 감독은 2011년 자신의 집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편집한 75분짜리 영화를 만들어 이란 당국의 연출 금지 조치에 맞섰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면서 부당한 조치에 항의한다는 의미에서 제목부터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였다. 이 영화는 극비 운송과정을 거쳐 같은 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깜짝 공개돼 세계 영화계의 화제를 모았다. 파나히 감독은 자국의 동료 감독과 공동연출한 ‘닫힌 커튼’으로 2013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택시’는 파나히 감독이 택시를 운전하며 만난 여러 테헤란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이란의 현재를 그린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택시 계기판에 카메라를 감추고 촬영했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파나히 감독은 예술가의 혼에 타격을 입힐 제약을 극복했다”며 “자신의 정신이 부서지거나 분노와 좌절에 압도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영화를 향한 연애편지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칠레영화 ‘더 클럽’이 가져갔다. 최우수감독상(은곰상)은 폴란드의 말고차타 주모프스카(‘몸’) 감독과 루마니아의 라두 주데(‘어페림!’) 감독이 함께 차지했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은 영국 영화 ‘45년’에 출연한 노장배우 샤롯 램플링과 톰 커트니가 각각 수상했다. 두 배우는 45주년 결혼기념일을 앞둔 노부부를 연기해 영광을 안았다. 올해 경쟁부문은 19편이 초청됐고 한국영화는 경쟁작에 들지 못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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