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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갈 길을 잃어버린 너

입력
2015.02.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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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가 금융소비자보호의 전성기였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난 3일 열렸던 ‘2015 범금융 대토론회’에 참석하고 나서 든 생각이다.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한국 금융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국내 금융이 지닌 수많은 고민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백팔번뇌를 연상케 하는 108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거의 7시간에 걸쳐 세 차례 100분 토론을 했다. 금융 현안을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턱도 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금융시장의 이해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아갈 길을 고민해 보자는 시도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은 국내 금융회사들은 각자 살기 바빠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또는 큰 틀에서 금융 발전을 생각할 여력이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내 집에 물이 들어와 잠길 판인데 옆집과 동네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지난 몇 년간 강조해 왔던 금융소비자보호는 이제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 ‘우리가 한때 그걸 강조했었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 같다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지난 주말에 봤다. 80대 나이에 접어드신 부모님들도 50대의 동료 교수도, 한국 영화는 왠지 진부하고 스케일이 작아 보고 싶지 않다고 잘난 체하는 20대 아들조차도 꼭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보고나니 모두가 왜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들 나름 열광하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랬다. 80대의 부모님은 잊고 있었던 유년기와 청년기를 기억하게 하는 장면들에 공감했을 것이다. ‘맞아 그랬었지’라는 옛추억의 그림자 때문에 열광하셨을 것이다. 20대의 아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이야기로만 들었던 일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흥미롭지 않았을까. 50대의 동료 남자 교수는 모처럼 체면 차리지 않고 맘껏 울게 해준 것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으면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뜬다. 격변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괜찮다’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 눈물 훔치며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 중 몇 명이나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를 ‘아버지 이야기’로 받아들였을까.

장황하게 영화 줄거리 이야기까지 꺼내는 이유는 전무후무하다는 ‘2015 범금융 대토론회’를 개최한 취지가 과연 전달이 되었을까 싶어서다. 모두들 각기 다른 처지에서 영화를 보듯 토론회 참석자들도 각기 자신의 처지에서 그 자리를 이해했으리라.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려면 관람객도 맥락을 이해할 만한 수준이어야 하고 감독도 줄거리와 영화 장면들에 자신의 의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정책 당국은 ‘우리’를 이야기 하고 싶었고 금융회사들은 ‘우리’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바에 대해 이해가 없었던 것은 조금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도 ‘나’에도 금융소비자보호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보호가 충분해져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은 아니리라.

금융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 한국 금융의 길은 어디로 나있는 것일까.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 금융소비자보호의 길’도 같이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처럼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조용히 동행한 금융소비자들도 이제는 보호받을 권리가 충분히 있는데 누가 그 길을 인도해줄까. 대통령일까, 국회일까, 정책 당국일까, 금융회사일까 아니면 금융소비자 스스로일까. 또 다른 금융위기가, 금융사고가 그 몫을 담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슬며시 드는 아침이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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