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석 노린 레이디 가가는 그저그렇고
잭 블랙은 코미디 아닌 메탈 부문 수상
모호한 기준·대중적 영합 지적에 수긍
2015년 그래미의 주인공은 샘 스미스였다.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서 ‘최우수 신인’에 ‘최우수 팝 보컬 앨범’ 부문까지 수상했다. 솔이나 알앤비를 일렉트로니카와 결합하거나 믹싱이나 사운드 효과를 통해 세련되게 바꾸며, 요컨대 21세기 식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은 최근 몇 년 동안 영미 팝음악의 경향인데, 샘 스미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를 보였다. 데뷔 때부터 화제였으니 그의 그래미 수상엔 이의가 없다.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록 앨범’ 부문은 벡에게 돌아갔다. 그의 앨범 ‘모닝 페이스’(Morning Phase)는 완성도 높은 수작으로 개인적으로도 2014년의 앨범으로 꼽는다. 벡의 음악적 행보는 꽤 기행적인데 수년 전에는 악보로만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는 비트나 랩, 전자음악과 같은 최신 기술을 빨리 흡수해 반영하는 데 탁월했다. 하지만 ‘모닝 페이스’는 실험보다는 안정에 더 가깝다. 음악적 미학을 강조하는 편곡과 녹음이 탁월하다.
하지만 진짜 재밌던 건 다른 쪽이다. 세 가지 정도 언급할 수 있다. 일단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칙 투 칙’. 이 앨범은 올해 아흔 살이 된, 그야말로 미국 팝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조합으로 발매와 함께 관심을 받았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팝의 원로들이 주로 발표하는 ‘송 북’(song book)을 콘셉트로 삼아 레이디 가가가 가세하는 이미지였는데, 이 앨범이 올해 그래미에서 ‘최우수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전통가요 부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두 사람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공연도 펼쳤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이 나왔을 때 든 생각은 레이디 가가가 토니 베넷이란 티켓으로 그래미 우등석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를 강조해 레이디 가가의 파격성과 불온함이 옅어지는 건 일종의 정치적 포지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결과물은? 그저 그랬다.
다른 하나는 ‘최우수 메탈 퍼포먼스’ 부문이다. 얼마 전 한국에도 다녀간 영화배우 잭 블랙이 속한 테네이셔스 디의 ‘더 라스트 인 라인’이 수상했는데, 이 곡은 디오의 트리뷰트 앨범 ‘디스 이스 유어 라이프’의 수록곡이다. 내한공연에서 “그래미 후보에 올랐는데 코미디가 아니라 메탈 부문이다”라고 말했던 바, 실제로 그래미 수상자가 됐다는 자체가 화제다. 테네이셔스 디의 노래가 실린 앨범에는 다른 밴드들의 쟁쟁한 곡들도 많았고, 실제로 최근 1~2년 사이엔 헤비니스 계열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앨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수상은 좀 의외다. 재미있는 소식이고, 팬들과 본인에게도 기쁜 소식이겠지만 솔직히 그래미의 권위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에 대해선 카니예 웨스트의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화제는 단연코 벡의 ‘올해의 앨범’ 수상 순간에 무대에 난입한 카니예 웨스트였다. 당시에는 재미있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상식 후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색하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그래미 선정위원회)에게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벡은 예술적 기교를 존중해야 한다. 그 상은 비욘세가 받아야 했다.” 한 마디로 벡의 수상에 동의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래미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이건 최근 10여 년 동안, 그러니까 2000년 이후의 미국 팝의 경향을 살피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드 록의 입지는 약해진 반면 힙합이나 솔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게다가 모든 음악 장르에 전자음악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혼종문화라고 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래미가 균형을 잘 못 잡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 이전에도 계속 있었다. 카니예 웨스트의 발언은 그걸 강렬하게 보여준 해프닝인데,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모호한 기준과 대중적 영합’에 대한 지적만큼은 수긍이 간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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