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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이후… 도망자 루슈디는 조용히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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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이후… 도망자 루슈디는 조용히 살지 않았다

입력
2015.02.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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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에 쫓겨 13년 간 도피생활

불륜ㆍ돈 집착ㆍ쾌락 추구한 삶

미추 적나라하게 고백한 자서전

조지프 앤턴 살만 루슈디 지음ㆍ김진준,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824쪽ㆍ3만3,000원
조지프 앤턴 살만 루슈디 지음ㆍ김진준,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824쪽ㆍ3만3,000원

이 책은 2012년에 발간된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이다. 조지프 앤턴이 누구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소설 ‘악마의 시’로 전 세계 무슬림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으며 13년간 도피생활을 해야 했던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68)가 존경하는 작가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은둔기의 가명이 바로 조지프 앤턴이기 때문이다.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의 끝 모를 야만이 전 세계를 전율케 하는 이때, 루슈디가 겪은 오랜 위협과 공포는 종식되지 않는 야만의 원형으로 오롯하지만, 인간이기에 불가피한 자유에의 의지와 참혹 앞에서 도리어 빛나는 존엄과 불굴은 희망의 증거로 빛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살만 루슈디의 생애를 기술하는 이 책은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중 100쪽 남짓을 제외하곤 모조리 1989년 시작된 숨막히는 도피생활을 그리는 데 할애한다. 그래서 제목이 ‘살만 루슈디’가 아니라 ‘조지프 앤턴’이다. ‘악마의 시’는 “예언자를 당대의 산물로,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로,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극복할 능력도 있는 지도자로 묘사한 소설”이며 이는 “예언자가 늘 원한다고 말했던 방식으로 예언자를 묘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성한 이슬람을 모독한 사악한 이단자로 지목돼,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는 전 세계의 무슬림을 향해 그를 처형할 것을 명한다. 세계 각지에서 수백명의 무슬림이 모여 ‘악마의 시’를 불태우고 폭력시위를 벌이며 살해 위협을 가한다.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문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화끈한 그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갈등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서 발생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처럼 보인다. 문학동네 제공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 ‘조지프 앤턴’은 문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화끈한 그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갈등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서 발생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처럼 보인다. 문학동네 제공

부유하고 지적인 변호사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루슈디는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숭배했던 인도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다. 황홀한 이야기의 달인들이었던 부모 덕분에 일찌감치 “이야기는 인간의 생득권”임을 깨달은 그는 13세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그러나 그를 끊임없이 배반해 그는 10여년 간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습작을 거듭해야 했다. 34세에야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그는 ‘악마의 시’를 발표하기 전까지 8년간 현실과 판타지가 곧잘 동의어가 되는 달콤한 명사로서의 삶을 만끽한다.

이 자서전의 미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3인칭 시점을 통해 확보한 실제 작가와 작품 속 인물 사이의 거리를 통해 흡사 식도부터 항문까지 거침없이 관통하는 내시경처럼 자신의 미추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작가의 태도다. 숨막히는 살해 위협의 공포 속에서도 자제할 수 없었던 연쇄적 불륜과 그 결과로서의 네 번의 이혼, 돈과 명성을 향한 적나라한 욕망, 쾌락에는 속수무책 지고 마는 철없음 등을 그는 자기조롱과 희화화까지 동원해 대담하게 펼쳐 보인다. “짐승 같은” 루슈디, “돈 때문에 관계를 끊어버리다니, 이 사실은 루슈디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와 같은 무성극의 변사와도 같은 서술이 자주 등장해 독자를 웃긴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복무함으로써 자서전을 자연스럽게 문학에 귀속시킨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과 같은 작가로서의 그의 대의는 자연인으로서의 누추함 때문에 도리어 찬란하다.

책에는 기백명에 이르는 영미권의 문화ㆍ예술계, 학계, 정계 명사들이 실명 그대로 등장해 ‘악마의 시’ 사태를 둘러싼 인간사의 만화경을 펼쳐보인다. 무명의 어둠을 뚫고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게 만든 편집자와 에이전트를 사뿐히 즈려밟고 거액의 판권료를 제시한 출판사로 옮겨간 루슈디는 내일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 사치가 되는 피폐하고 무력한 도피생활 중 ‘배신의 아이콘’을 향해 손을 내미는 두 전임자의 연락을 받는다. “루슈디, 당장 우리 집으로 와서 숨어요. 아무도 당신이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찬반 논란, 세계의 가장 위대한 작가 100명의 명단이라고 해도 좋을, 존경하고 가까웠던 작가들이 비판과 옹호로 갈려 맞서는 모습들은 루슈디 자신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품과 비열을 동시에 겪게 만든다. 그는 친구들이 세워준 공고한 우정의 벽 안에서 가까스로 생존할 수 있었다.

책은 2001년 9ㆍ11 테러로 자신에 대한 처형 명령이 실질적으로 해제돼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는 2002년을 그리며 끝을 맺는다. “문학, 영화, 음악, 사상의 자유, 아름다움, 사랑. 그것이 우리의 무기다. 우리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없이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을 꺾어야 한다. 테러리즘을 패배시키는 방법? 두려워하지 말자. 공포에 사로잡힌 채 살지 말자. 아무리 무서워도.”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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