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저지 수단 부재 속 '민심은 내편' 자신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3일 취임 후 첫 시험대인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여부를 놓고 '여야 공동 여론조사' 제안이라는 깜짝 카드를 던졌다.
문 대표가 그 동안 이 후보자 관련 문제를 원내 지도부에 일임하고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왔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당 대표 메시지팀에서 이날 오전 보고한 최종 연설안에도 포함되지 않은 돌발 발언인 것으로 전해져 상당수 측근들조차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론조사 제안은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는데도 야당으로서 쓸 만한 '무기'가 거의 없다는 문 대표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당 핵심 관계자는 "(여론조사 아이디어는) 문 대표 고유의 생각"이라면서 "김현미 대표 비서실장 등 극소수의 측근들하고만 어제 상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오는 16일로 미루기는 했지만, 재합의한 의사일정을 다시 미루거나 보이콧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16일 본회의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는 게 딜레마다. 이 경우 다수 여당과의 표 대결에서 패할 가능성이 크고, 야당 내 이탈표가 나올 것으로도 우려된다.
그렇다고 16일 본회의 표결까지 불참하면 국정 발목잡기라는 비난과 '문재인호' 출범 후 강경 대치정국을 주도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당내에 온건주의자도 20∼30%는 된다"며 "자진사퇴가 상책인데 중책, 하책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따라서 주말 사이 여론전을 통한 이 후보자의 자진사퇴 유도를 최상의 시나리오로 보고, 이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당이 동참하는 공동 여론조사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 측 관계자는 "애초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판단 자체가 국민 눈높이에 근거해서 정한 입장이었는데 점점 더 여론이 악화되고 있으니 민심에 근거해서 판단하자고 주장한 것"이라며 "민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민주정책연구원이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최근 세 차례 실시한 이 후보자 적합도 조사에서 '부적격' 답변이 1차 52.9%, 2차 53.8%, 3차 55.0% 등 모두 과반으로 나왔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문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본회의가 16일로 연기된 것은 이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라며 "우리 당은 여론조사 결과에 승복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워낙 의혹과 비리가 많은 종합선물세트"라며 "이 후보자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했고, 정청래 최고위원도 "이 후보자에 대해선 국민이 이미 레드카드를 발부했다. 알아서 처신하기 바란다"라며 압박했다. 오영식 최고위원도 "설 명절 전에 결단하라. 그게 뜻깊은 설 명절 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1야당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원내 현안을 여론조사에 의존해 풀어가려 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무책임한 결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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