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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승기념일의 정치학

입력
2015.02.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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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전승기념일의 의미는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에게는 나치 독일을 격퇴해 파시즘에서 유럽을 해방시킨 전쟁이지만 러시아의 전승에는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러시아가 ‘대조국(大祖國)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미국과의 신냉전이 한창인 요즘에는 이런 민족주의 경향이 더욱 짙다. 전승 70주년인 올해 5월9일 붉은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하고 많은 각국 지도자들을 초청하려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 제재와 고립에서 탈피하겠다는 몸짓이다.

▦ 전승기념일을 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연합국의 힘으로 광복을 맞았지만, 분단 또한 그 외세의 개입으로 초래됐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38선을 그어 신탁통치를 결정하고 결국 나라를 두 동강낸 미국과 소련의 전승기념을 마냥 축하하기는 어렵다. 한국전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27일을 “미 제국주의 침략을 격퇴했다”는 전승기념일로 선전하는 북한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전리품 챙기듯 약소국의 운명을 유린한 전쟁의 야만성을 탓할 뿐이다.

▦ 미국이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불참을 공식 확인하면서 한국에게도 불참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던져 파장이 미묘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결부시켜 “전 세계가 주권과 영토 단일성이라는 원칙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의 설명은 전승기념행사가 얼마나 정치적인가를 드러낸다. 10년 전 60주년 행사 때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붉은 광장에서 러시아의 군사퍼레이드를 참관했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에 대해 “마지막 단계에서 판단할 것”이라며 일단 발을 뺐다. 김정은 북한 제1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고,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라는 판단이 깔린 발언일 것이다. 우리로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염두에 둘 만큼 남북관계가 여유롭지는 않다. 형식과 내용을 떠나 김 제1위원장과 박 대통령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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