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이완구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 본회의를 16일로 늦추기로 한 것은 일단 잘 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어제 한때 단독으로라도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기세여서 국회 안팎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국회 이완구인사청문특위는 야당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의 강력한 중재로 전례 없는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여당 단독처리 사태를 피하게 됐다.
물론 불씨는 남았다. 야당이 국회 본회의를 늦추는 것만 합의했을 뿐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에는 합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탓이다. 이틀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여러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증폭된 만큼 국민여론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야당 측 논리다. 그러나 일정을 한없이 늦출 수는 없다. 국회가 이 후보자의 총리 자격 여부를 판단할 최소한의 근거는 확보됐다. 우리는 이 후보자가 도덕성과 자질 면에서 중대한 흠결이 드러난 이상 스스로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본인이 그럴 의사가 없는 한, 이제는 합당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는 일만 남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표결 방식이다. 인사 사안에 대한 국회 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진다. 문제는 여당 내에서 당론으로 찬성 여부를 정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에 실패하면 박근혜 정부 들어 총리후보의 세 번째 낙마가 된다. 정권에 주는 타격이 엄청난 데다 임기 3년 차를 맞은 박 대통령의 국정쇄신 구상에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런 절박한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당론투표로 총리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각자가 헌법기관인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게 되면 두고두고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야당 역시 끝까지 임명동의안 합의처리를 거부하거나, 합의처리에 동의하고서도 전원이 표결에 불참하는 식의 구태는 피해야 한다. 이번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는 새로 선출된 지도부가 국회 운영에 어떻게 임하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야당의 선명성을 돋보이려고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도 없지 않겠으나 그게 꼭 국민들의 눈에 좋게 비친다고는 보기 어렵다. 국민들은 더 이상 국회에서 여야의 저급한 충돌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당당히 표결에 임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야당상을 정립할 때가 됐다.
정 국회의장은 이날 집권 여당에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다각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제1 야당에는“청문 절차를 밟았으니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해 전체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표결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야는 국회의장의 간곡한 당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