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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남리사지는 노천 박물관인 듯… 8km 탐방로 4시간도 모자라

입력
2015.02.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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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속살 제대로 즐기게 삼릉길 이어 작년 여름 개설

황토 포장길에 데크·벤치·정자… "칠불암·신선암 마애불은 환상적"

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신라로 불리는 경북 경주 남산의 동쪽자락을 안내하는 ‘동남산 가는 길’이 개설됐다. 최근 복원돼 경주의 새 아이콘으로 뜨고 있는 월정교(위 사진)가 그 길의 시작점으로 남리사지, 불곡마애여래좌상, 탑곡마애불상(아래 사진 차례대로) 등을 지난다. 경주시청 제공
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신라로 불리는 경북 경주 남산의 동쪽자락을 안내하는 ‘동남산 가는 길’이 개설됐다. 최근 복원돼 경주의 새 아이콘으로 뜨고 있는 월정교(위 사진)가 그 길의 시작점으로 남리사지, 불곡마애여래좌상, 탑곡마애불상(아래 사진 차례대로) 등을 지난다. 경주시청 제공

경북 경주에 있는 남산은 신라 서라벌의 진산이다. 동서 4㎞, 남북 8㎞ 가량의 장방형의 산자락은 주봉인 금오산의 해발고도가 469m밖에 되지 않는 ‘야산’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그곳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역사가 담겨 있다. 1,000년의 신라를 품었고 지금껏 그 신라가 살아 숨쉬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가치를 지닌 산이다.

남산에는 13기의 왕릉을 비롯해 산성터 4곳, 절터 150곳, 불상 129개, 석탑 99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확인된 문화유적만 694점에 이른다. 최근 들어서도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남산의 웬만한 바위는 불상 아니면 탑이다. 신라인들은 불법이 다스리는 이상세계인 불국정토(佛國淨土)를 꿈꾸며 산 속 바위에 부처를 새겼다. 누군 신라인들이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게 아니라 바위에서 부처를 끄집어낸 것이라 한다. 남산 전체가 보물이고 남산 전체가 천년 신라의 역사인 셈이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남산 탐방객은 53만8,000명이다. 남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전남 영암 월출산이 43만명, 강원 치악산이 60만명, 소백산이 80만명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탐방객을 안내하는 길들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뚜렷한 주제도 없었고, 수 백 개에 이르는 샛길은 이곳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고역이었다.

경주 남산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명품 탐방로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2011년 ‘삼릉 가는 길’에 이어 지난해 여름 ‘동남산 가는 길’이 열렸다. 올 연말까지 ‘남산 가는 길’, 2017년에는 ‘남산 둘레길’도 뚫린다.

이중 동남산 가는 길은 월정교를 시작으로 수많은 불상과 왕릉, 사찰 등 남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코스다.

길은 경주의 새로운 명소 월정교에서 시작해 불곡석불좌상과 경북산림환경연구원 헌강왕릉을 거쳐 남리사지(옛 염불사지)까지 남산의 동쪽으로 개설된 8㎞의 탐방로다. 황토로 포장되고, 나무 데크와 정자, 벤치 등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편도 2시간 정도 거리이지만, 제대로 보려면 4시간도 부족하다.

사적 제 457호인 월정교는 궁궐인 월성에서 남쪽을 감싸고 흐르는 문천(남천)을 건너기 위해 놓여졌던 교량으로, 길이 60m 가량의 돌다리 위에 누각과 지붕을 얹은 누교(樓橋)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시는 오랫동안 고증을 거쳐 복원에 착수, 2012년 교각과 누각을 완공했고, 올 연말까지 문루 복원까지 마칠 계획이다. 특별한 날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하지만, 벌써부터 환상적인 야경으로 경주의 명소가 되고 있다.

인용사지를 지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는 길 뒤편 개울에는 일정교(日精橋) 터가 있다. 이 다리는 효불효교로 유명하다. 한 과부가 아들 7형제를 기르며 이웃 동네 홀아비와 사랑에 빠져 밤마다 찾아갔는데, 이를 알게 된 아들들이 어머니가 쉽게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후인들은 어머니에게는 효도이지만 아버지에게는 불효라고 해서 효불효교라 불렀다.

신라의 문신 최치원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집인 상서장을 지나 산기슭으로 들어서면 보물 제198호 경주남산불곡마애여래좌상을 마주치게 된다. 바위를 속으로 1m가량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새긴 것으로, 이 지역에서는 ‘할매부처’라고도 불린다. 감실 속 부처의 후덕한 인상 때문인지 선덕여왕을 부처의 모습으로 새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경주 남산탑곡마애불상군과 미륵곡석조여래좌상을 둘러본 동남산 가는 길은 잠시 산자락에서 빠져 나와 동쪽의 사천왕사지와 망덕사지를 안내한다.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헌강왕릉 정강왕릉 통일전 서출지 무량사 등을 거쳐 남리사지에 이른다.

남리사지에 있는 동탑엔 기구한 사연이 깃들어있다. 충성스런 관료들의 과잉 충성 때문에 46년간 귀양을 다녀와야 했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주를 방문하게 되자 당시 관료들이 잘 보이겠다며 주인이 없던 이 탑을 제멋대로 불국사 인근의 구정삼거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원래 자리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2006년에야 제자리를 찾게 됐다.

동남산 가는 길은 남리사지에서 멈췄지만 이 길이 진정 안내하고 싶은 곳은 남리사지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칠불암과 신선암이다.

김구석(60) 경주남산연구소장은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신선암 마애보살 유희좌상은 놓쳐선 안 되는 곳”이라며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져 조형미가 뛰어나고 자연과의 조화도 환상적이라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남리사지에서 서쪽방향 산자락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마애삼존불에 사불암이 더해져 불상 일곱을 모신 곳이다. 마애삼존불 앞에 네모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각 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눈부신 바위 절벽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조각상이다. 2009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유적이다.

칠불암을 지나 절벽으로 난 길을 오르면 신선암마애불이 기다린다.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얼짱’ 불상이다. 구름 좌대에 앉은 보살은 편하게 다리를 푼 채 한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애불 옆에 서서 마애불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골골이 사선으로 겹쳐진 남산의 산자락과 드넓은 경주의 들판을 마주하게 된다.

신선암마애불 앞에서 만난 이경희(49ㆍ자영업)씨는 “이곳이 남산 최고의 전망대로, 예전에는 길이 워낙 험해 일반인들은 접근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나무계단과 추락 방지 펜스 등일 설치돼 있어 누구나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일(50) 경주시 문화융성과 팀장은 “올해는 경주 관광객 2,000만 시대 원년으로 정하고 문화유적을 잘 보전하면서 탐방객들이 관람에 불편함이 없도록 코스를 정비하고 있다”며 “산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남산을 전국민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레일은 경주 최부자집 인근에 주차하고 월정교에서 출발, 남리사지에서 원점으로 회귀하거나 택시로 이동하는 게 좋다. 대중교통 이용객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월정교까지(약 3,500원)간 뒤 그곳에서 출발, 탐방을 끝낸 뒤 통일전 근처에서 18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1번 노선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가면 된다.

경주=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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