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듯 쓸쓸하게 찰랑거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소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고풍스런 풍경, 사춘기를 갓 넘긴 청춘들의 설익은 풋사랑. 우연히 만난 세 젊은이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그린 ‘갓 헬프 더 걸’은 상큼하고 달콤하며 씁쓸한 영화다. 12일 두 번째 내한공연을 한 스코틀랜드 인디 팝 밴드 ‘벨 앤 세바스천’의 리더 스튜어트 머독이 전곡을 작곡하고 연출까지 했다. 20년 전 감독이 대학생 무명 음악가였던 시절 느꼈을 법한 불안과 설렘, 흥분을 담았다. ‘쉘부르의 우산’이나 ‘로슈포르의 연인들’ 같은 고전 프랑스 뮤지컬 영화의 현대 스코틀랜드 판이랄까. 영화에는 고풍스러운 낭만이 넘친다. 20년 가까이 체임버 팝 장르의 대표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벨 앤 세바스천의 팬이라면 두 손 들고 반길 만하다.
주인공은 밴드를 하는 남자친구를 따라 호주에서 글라스고로 온 소녀 이브(에밀리 브라우닝).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진 뒤 마음의 병을 얻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이브에게 유일한 낙은 피아노를 치며 직접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답답한 병원에서 탈출해 공연장으로 향한 이브는 인디 록 밴드 ‘절뚝이는 생쥐’의 잘생긴 보컬리스트 안톤을 알게 되고, 아마추어 싱어송라이터 제임스(올리 알렉산더)와 만나 친구가 된다. 이브는 제임스가 기타를 가르치는 부잣집 소녀 캐시(해나 머리)를 소개 받아 의기투합한다.
이브와 제임스, 캐시는 ‘갓 헬프 더 걸’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시작한다. 세 남녀의 처지와 환경, 성격이 서로 다른 만큼 밴드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제임스는 이브를 짝사랑하지만 이브는 안톤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브의 병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감독은 등장 인물들 사이의 세밀한 감정까지 신경 써서 치밀한 구성의 이야기를 짜는 대신 뮤지컬 장면으로 빈 공간을 채운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뮤지컬 장면이 과일맛 사탕처럼 시큼하고 달콤하다. 시청각적 즐거움은 큰 반면 인물들 사이의 감정 흐름이나 이야기의 짜임새가 다소 헐거워 기승전결의 또렷한 구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1시간 51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느낌이 든다.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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