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美 초저금리 틈타
값싼 달러로 신흥국 투자 호황
美 금리인상 가능성 높아져
터키ㆍ브라질ㆍ중국 등 투자금 썰물
캐리 트레이드 영향권 한국도 불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미국의 초저금리 시대는 세계적인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의 전성기였다. 선진국에서 빌린 싼 자금이 신흥국의 고수익 상품에 몰려들면서 각국의 주식, 채권, 상품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출구전략과 세계적인 불경기가 겹치면서 이런 캐리 트레이드 유행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터키, 브라질, 중국 등 대표적 신흥국에서 잇따라 예전과는 다른 이상신호가 감지되면서 한국 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 채권의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자재 시장의 슈퍼 사이클(강세 시기)과 미국의 양적완화가 끝난데다, 경기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신흥국들이 금리까지 다투어 내리면서 통화가치마저 떨어져 갈수록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미국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ㆍ채권 순매수 규모(-169억달러)는 2008년(-742억달러)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해외 주식과 채권에서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상 징후의 대표 사례는 터키다. 에너지 수입비중이 높은 터키는 작년만 해도 국제유가 하락의 1등 수혜국으로 주목 받으며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몰렸다. 터키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작년 9월 9.8%에서 지난달 6.8%까지 하락(국채가격 상승)했다.
하지만 각국의 경쟁적인 통화완화 바람 속에 터키 정부가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자 다시 투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터키 리라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이달 들어 2.28리라에서 2.48리라로 상승(가치 하락)했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7.8%까지 되올랐다.
캐리 트레이드의 단골 투자국이었던 브라질도 심상치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국영 석유회사(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스캔들 등으로 브라질 헤알화 환율은 최근 달러당 2.84헤알까지 치솟아 2004년 이후 최고치(헤알화 가치 급락)를 기록 중이다.
FT는 중국에서도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국제수지 중 자본 유출입을 반영하는 자본계정에서는 작년 4분기 사상 최대인 910억달러(약 99조2,080억원)가 순유출됐다. 작년 2분기부터 시작된 순유출 현상은 3분기 567억달러에 이어 점점 규모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외채 형태로 중국에 들어온 외화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중국 당국이 빠져나가는 자금을 메우고자 돈 풀기에 나설 경우, 위안화 가치가 더욱 떨어져 최대 교역국인 한국에도 큰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돈풀기를 진행중인 일본의 엔화나, 대규모 양적완화를 발표한 유로존의 유로화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빈 공간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수익을 보장하는 시장이 많지 않아 아직은 뚜렷한 캐리 트레이드의 차기 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임박해지면 우리나라에서도 자금 이탈이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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