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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개똥녀·군삼녀… 女가 싫다"

입력
2015.02.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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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경험이 피해의식 불러, 인터넷 익명성 타고 번져

男 "데이트 비용·가산점 폐지… 우리가 역차별 당한다"

女 "개인 사례 일반화는 저질, 남자 우월의 유교 문화 탓"

1월10일 시리아로 향해 ‘이슬람 국가(IS)’의 일원이 된 김모(18)군은 IS가입 전 트위터에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썼다. 그가 왜 페미니스트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정말로 이것이 IS가입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이유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의 발표에 따르면 그는 집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전화도 거의 하지 않고 주로 컴퓨터를 통해 이슬람 국가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고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가 온라인상 퍼져있는 ‘여성혐오’ 경향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적잖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치녀’란 말이 수없이 반복해 쓰인다. 남성회원들이 많은 극우성향의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자주 보이는 이 단어에는 여성을 보는 남성의 분노와 악감정이 드러난다. 한국의 특성을 풍자적으로 지칭할 때 쓰는 ‘김치’와 ‘개똥녀’‘군삼녀’‘루저녀’등에서 볼 수 있듯, 여성을 낙인 찍는 용도로 흔히 동원되는 ‘-녀’가 결합한 단어다.

이 단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어에 가깝다.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남성들에게 우리나라 여성은 '여성이란 이유로 곤란을 회피하고 권리는 동등하게 가져가려 하며 사회 활동을 하는 남성에게 기생하려는 무능하고 비열한 집단'으로 규정된다.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의 한 이용자가 작성했고 ‘일베’에서 널리 읽히는 ‘보트릭스(여성의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과 매트릭스를 결합한 단어) 이론’이란 게시물은 “여성과 국가가 연애ㆍ결혼ㆍ가족이라는 거짓된 환상을 주입해 남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웹 공간은 ‘남초’와 ‘여초’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은 지 오래 됐다. ‘엠엘비파크’같은 스포츠 취미 커뮤니티가 ‘남초’라면, ‘베스티즈’처럼 연예인과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커뮤니티는 ‘여초’다. 초거대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역시 게시판의 주제에 따라 이용자 성향이 갈린다.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모여 자신들의 편견과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강화한다.

하지만 ‘여초’사이트는 소수인 반면,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고 인기 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이용하는 것은 주로 남성들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온라인 상의 여성 혐오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빗나간 여성혐오현상은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베’를 특징짓는 것은 여성혐오와 정치적 보수성인데,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 성향의 페이지에서도 광범위한 여성 혐오적 태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혐오발언이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대체 여자가 뭘 잘못했기에

남성들이 ‘역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적인 경험. 대학생 정규영(가명ㆍ27)씨는 여러 차례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여성 혐오’경향이 강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한테 먼저 접근하고 먼저 뭔가를 제안해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도무지 뭘 해도 만족하질 않고 가만히 받고만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연락을 끊어버리니까 연애하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너무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남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유상현(가명ㆍ25)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 씨는 “평소에는 여성 혐오를 보이지 않더라도 여자친구가 데이트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다거나, 아르바이트에서 같이 일하는 여자가 몸을 사린다고 불만을 표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여성이 많은 직장에서 일한다는 조영훈(가명ㆍ31)씨는 “아무래도 여성이 많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부딪칠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들끼리 무언의 동맹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더라도 결국 제가 남자니까 참아야 하고, 힘든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 이야기 들은 이후로는 사내 인간관계는 포기했고 그냥 내 할 일만 하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제도적 문제. 남성들은 군대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이들에게 공무원 시험 군 가산점 폐지는 ‘한국 여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유정열(가명ㆍ30)씨는 “소수점 아래까지 중요한 공시인데 응당 받아야 할 군 가산점을 폐지한 것은 잘못됐다. 누가 원해서 군대를 가느냐”고 강변했다. 박철민(가명ㆍ26)씨는 기업 채용시 여성할당제를 문제 삼으면서 “입사시험을 볼 때 여성에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남성은 솔직히 취업에 임박해서 2년을 생으로 날리는 것 아닌가. 이 부분을 대체 어떻게 보상받으란 말인가”라고 강변했다.

그래도 일부의 생각이다

유상현씨는 2년 전 군 복무를 하면서 잠시 ‘일베’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복무가 끝나고 여성들과 만나다 보니 ‘일베’의 여성 혐오는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역 후 다양한 경험과 대인관계를 넓혀가다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조영훈씨 역시 자신의 경험이 일반화될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여성의 사회진출도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는 남자들이 너무 적으니까 오히려 남자를 더 뽑는다. 그런데 그 경우도 상위 직위로 가면 여성들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면 여성들이 더 많이 기회를 얻는 지금 방향이 여전히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대신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도록 제대로 설득하고 양성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여성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혐오하게 하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씨는 “한국의 전통적 유교 사상에는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며 “서양의 개인주의가 들어온 후 남녀 모두가 서로에게 유리한 것만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 역시 “이제 누가 더 위에 있고 하는 개념은 없다는 건 아는데 괜한 의무감만 남아서 남자들이 괴로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본 여성혐오

“왜 못해요? 말해야죠.” 직장인 김영진(가명ㆍ27)씨는 반박했다. 그는 “만약 여성 혐오자들이 싫어하는 여성 행동들이 진짜 도덕적으로 잘못된 거라면 직접 말하는 게 맞다. 지금처럼 여성 혐오를 ‘놀이’처럼 하는 건 서로 다툼만 심해지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혐오와 같은 현상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일부이긴 하지만 젊은 남자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연희(가명ㆍ25)씨는 ‘여성 혐오’발언에 대해 의견을 묻자 “저질스럽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기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경우라면 그 여자가 잘못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걸 여성 전부한테 책임을 묻는 건 당치 않은 일반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들이 유난히 많이 언급한 ‘데이트 문화’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외국에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한테 얹혀사는 남자도 있고 남자친구가 주는 용돈으로 자기 차 기름값 쓰는 여자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문제이지 결코 ‘김치녀’만 그런 게 아니다"면서 “최근 데이트 비용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오다 보니 주변에서는 다들 칼 같이 나눠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 중인 박수민(가명ㆍ26)씨는 제도적인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을 내놓았다. 그는 “대학을 다닐 때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문화가 있으니까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사회에 나오고 나니 여성이 불리하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박씨는 “여자들이 지금까지 불이익을 당해왔기 때문에 감내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 반면 남자들은 적은 손해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고, 이 때문에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 주장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김세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4)

여성 혐오의 원인

사실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학자 레윈 코넬은 ‘남성성/들’(이매진, 2013)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1970년대 초 서구의 남성성 연구자들은 여성 운동을 통해 남성도 전통적 성 역할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반페미니즘 남성 단체가 득세하고 남녀는 성 해방 운동 전선의 적대 관계가 됐다. 대중문화는 전통적인 가족과 성 역할을 옹호하고 여성주의 운동을 희화화하는 데 열중했다. 이는 2008년 결성된 남성연대와 2009년부터 유행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여성 혐오 ‘놀이’를 연상시킨다.

신자유주의가 지배 담론으로 등장하면서 눈에 보이는 남성의 우위는 붕괴됐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킨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는 ‘소수자 우대 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모든 반시장적 정책 개입에 반대한다. 현대 사회는 소수의 ‘탈젠더화’된 여성을 제외한 모든 여성을 사회에서 낙오시킨다. 물론 성공하지 못한 남성도 낙오한다. 한국 청년 남성들이 주로 데이트 비용이나 군입대로 인한 고용의 불평등 등을 문제 삼는 것은 경제적 성취를 얻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것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들이 동일한 약자 입장에 서 있는 여성을 손쉬운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여성주의가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영국의 배우 엠마 왓슨은 2014년 9월 UN에서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여성 운동이 고정된 성 역할로 인해 고통 받는 남녀 모두를 해방하는 운동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태훈 칼럼니스트가 ‘그라치아 코리아’ 48호에 게재한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에서 드러나듯이 여성주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은 ‘투쟁적이고 여성들의 권리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여성주의’다.

조영훈씨는 “우리 세대 남성들은 여성주의 하면 여성가족부와 게임 셧다운제,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를 떠올리기 쉽다”며 “여성주의가 양성 해방이라는 목표를 지닌다면 한국에서는 일단 여성가족부가 남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도록 여성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고 설득하는 역할을 적극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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