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국방부의 ‘군사외교’와 미국 국무부의 ‘감성외교’가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이슈를 놓고 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먼저 중국의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이 지난 3일 한국을 방문했다.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는 것은 2011년 이후 4년 만이고,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은 2006년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 방한 이후 9년 만의 일이라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다음 날 회의에서 양국 국방부간 직통전화 설치를 위해 과장급 실무회의를 열기로 하고 지난해 중국군 유해 송환에 이어 추가로 발굴된 68구의 유해를 올해 3월 송환하기로 합의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회의 도중 창 부장이 사드의 한국 내 배치에 대해 중국의 우려를 표명했고 이에 한민구 국방장관이 “미국의 배치 결정도, 한국에 요청도, 한미간 협의도 없었다”고 밝힌 일이 회의 후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알려졌다.
국내 여론은 출렁거렸다. 사드 배치 여부는 한국의 주권에 관한 문제인데 중국이 이를 간섭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향한 실질적인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으면서 눈앞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내 사드 배치 논의에는 자국의 우려를 내세우며 반대한다는 반응이다.
창 부장이 방한해 사드에 대한 우려를 적어도 비공개 회의에서 표명하리란 것은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지난 해 7월 시진핑(習近平) 주석 방한 때에도 비공개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거론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국 고위관료가 사드에 우려를 표명한 사실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런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은 최근 중국내 군사외교 정책 변화에서 일부 단서를 찾아 볼 수 있다. 창 부장이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1월 30, 31일 베이징에서는 전군외사공작회의(全軍外事工作會議)가 개최됐다. 회의 개최 전날인 29일에는 시 주석이 전군외사공작회의와 제16차 무관공작회의(武官工作會議) 대표들을 함께 접견해 당의 외교 국정방침 전면적인 관철, 군사외교 신국면 창설, 중국의 꿈과 강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공헌을 강조했다.
다음날 이어진 전군외사공작회의는 그야말로 시 주석의 담화를 분석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모임이라 볼 수 있다. 판창룽(范長龍) 중앙군사위 부주석, 창 국방부장, 양제츠 국무위원 겸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등이 차례로 나서 시 주석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발언들을 이어갔다. 이 회의 직후 한국을 방문한 창 부장으로서는 중국의 안보 이익이 걸린 사드 이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8일에는 미 국무부 부장관 토니 블링큰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도착한 날 저녁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서울의 한 삼계탕 집에 들러 식사를 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했다. 리퍼트 대사는 트위터에 “정말 근사한 맛”이라는 글을 올렸고, 자신의 블로그에는 블링큰 부장관이 이번 방문기간 중 맛있는 한국 음식을 먹고 문화 명소를 들러보고 싶다는 의지를 표했다고 적었다. 이어 9일 블링큰 부장관은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임을 강조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역시 “결정이 안 됐기 때문에 언급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중국이 투박한 군사외교를 선보였다면 미국은 정보기술(IT) 세대의 소통방법과 한국인들의 정서에 감성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보였다. 사드와 같은 정치·안보 이슈에서 상대국민들의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미국은 잘 알고 있다.
미중 외교를 비교평가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상대국에 우리의 국익만을 투박하게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고 싶다. 돈은 중국에서 벌고 동맹은 미국하고 한다는 중국의 불만과,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중국군대와 싸웠더니 한국이 이제 중국의 편에 선다는 미국의 정서에 한국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진정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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