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ㆍ한국전통문화대
닥지-접착제-금박 올려 제작
수공 문직기 등 유물도 복원
수공 문직기(紋織機ㆍ직물을 짜는 틀) 화루 위에 인문장(引紋匠ㆍ옷감에 들어갈 무늬를 짜는 사람)이 앉았다. 그가 실타래 몇 가닥을 들어올리자 문직기 앞에 앉은 직조장이 그 사이로 금실을 밀어 넣었다. 같은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하자 파란 옷감 위에 금색 원앙이 새겨졌다. 11일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에서 조선 영조 이후 명맥이 끊겼던 전통 금사(金絲) 제작과 직물표면에 금사로 문양을 넣는 직금(織金) 제직(製織)이 재현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전통문화대 전통섬유복원연구소가 2011년부터 연구한 끝에 복원한 전통 기술을 선보인 자리다.
금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직조와 자수 등 섬유공예에 사용돼온 전통 소재 중 하나다. 장식성이 가장 뛰어난 금사는 왕이나 귀족이 입는 옷감에 화려한 문양을 넣기 위해 제작됐다. 하지만 1733년 영조가 사치품 제작을 금하면서 금사제작 기술의 명맥이 끊겼다. 고려시대 남색원양문직금능(보물 제1572호), 조선시대 금원문직금능 등 다량의 직금 유물이 발견됐지만 이를 복원할 원천기술이 없었다.
베일에 싸인 금사 제작기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연구팀은 ‘오주서종박물고변’ ‘임원경제지’ 등 한국 중국 일본의 고문헌 111종을 살폈다. 그 결과 배지(맨 아래에 넣은 종이) 위에 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에 금박을 올려 0.03~0.04㎜ 너비로 재단해 금사를 뽑아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통 한지인 닥지를 배지로 사용했다는 점도 알게 됐다. 상피지와 죽지를 사용하는 중국, 안피지를 사용하는 일본과 차별화된 한반도 고유의 금사제작 기술이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는 적지 않았다. 배지, 접착제, 금박의 재료, 너비 등이 고문헌에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아 일일이 검증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4년에 걸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닥지 위에 금박을 두 장 덧대고, 아교와 주토를 섞은 접착제를 사용하는 것이 전통 금사 제작에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소는 이를 토대로 고려시대 ‘남색원앙문직금능’, 조선시대 ‘연화문직금’ 등 총 3개의 직금 유물을 복원했다. 이날도 전통 수공 문직기로 ‘남색원앙문직금능’을, 자카드 문직기(서양식 직물제작 기계)로 ‘금원문직금능’의 문양을 만들었다. 옷감에 원앙을 새기고 있던 직조장 이희진(26ㆍ여)씨는 “15시간 작업하면 길이 50㎝의 직물이 생산된다”며 “품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공 문직기로 만들어진 직금은 투명 필름지에 증기로 금을 증착시키는 현대 금사 기술보다 선명하고 밝은 빛을 냈다.
이번 연구의 총책임자인 심연옥(55)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은사인 고 민길자 선생님과 30년 동안 금사의 비밀을 풀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원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 비밀을 풀었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적 공예 기법과 접목해 금사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부여=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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