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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공산당 좌파 대표 이론가 덩리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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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공산당 좌파 대표 이론가 덩리췬

입력
2015.02.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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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리췬 전 중앙선전부장.
덩리췬 전 중앙선전부장.

덩샤오핑(鄧小平)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후야오방(胡耀邦)과 정면으로 대립했던 중국공산당 정통 이론가 덩리췬(鄧力群ㆍ사진) 전 중앙선전부장이 10일 베이징(北京)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향년 100세.

후난(湖南)성 구이둥(桂東)현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35년 베이징대에 입학했으나 바로 옌안(延安)으로 가 36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동북 지방과 신장(新疆)지역 등으로 파견돼 공산당 통치에 반대하는 신장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신장을 평정한 후 베이징으로 와 당 기관지 훙치(紅旗)의 편집을 맡았고 이후 덩샤오핑의 정치적 기반이 된 정치연구실에 합류했다. 평소 ‘수호전’을 좋아하며 의리를 중시한 그는 덩샤오핑을 비판하란 상부의 명령을 끝까지 거부했다. 77년 덩샤오핑이 복권된 뒤 그는 덩샤오핑 연설 원고 작성자로 발탁됐다. 그는 당 정통 사상의 수구주의자로 존중을 받았고 이 때문에 지식인과 민주세력에겐 가장 큰 미움을 받았다. 그는 계획경제를 강조하고 성급한 시장화에 반대한 천윈(陳雲) 전 부총리와 함께 보수파를 대표해 ‘좌파의 왕’으로도 불렸다. 이에 따라 개혁개방을 강조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 등과는 치열한 노선 투쟁을 벌였다.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논리가 정연하며 자신이 확신만 하면 끝까지 입장을 고수하는 사상가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신화통신은 이날 그에 대해 “우수한 공산당원, 오랜 경력의 충성스런 공산주의 전사, 무산계급 혁명가, 우리 당 사상이론과 선전 전선의 걸출한 지도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다”고 평가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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