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선 패배 2년만에 제 1야당 대표로 정치전면에 복귀했다.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낸다면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참고 인내하던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상당히 강한 어조였다.
대표 취임 후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도 참배했다. 이를 두고 찬반 의견이 분분한데, 문 대표는 국민통합 차원에서 그리하였다고 밝혔다. 진보세력에게 부족했던 포용성을 상쇄하는 행동이다. 여론도 호의적이다. 문제는 야당으로서 새정치연합의 선명성 확립이다.
불통 박근혜 대통령과 ‘십상시’ 참모들이 정국을 주도한 지난 2년 동안 새정치연합은 존재감 없이 겉돌며 국민들에게서 외면 받아 자멸해갔다. 일부에서는 고질적인 계파 갈등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계파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정당 안에 여러 계파가 있다는 것은 서로의 힘을 견제하며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새누리당 안에도 박 대통령과 관계를 중심으로 종박, 친박, 신박, 탈박, 비박 등 각종 ‘박’들이 바글거리는데, 누구도 계파 갈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야당이 하면 계파 갈등, 여당이 하면 충정 어린 쓴 소리일까? 새정치연합의 계파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극우 편향 언론들이 쳐놓은 덫에 빠진 듯 하다. 하지만 두 정당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선거나 중요 정책에 직면하면 자기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새누리당의 여러 ‘박’들은 하나가 되어 힘을 합친다. 설령, 다른 ‘박’이 권력을 쥐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강행하더라도 좀체 잡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큰 일을 도모할 때일수록 연합이 되지 않았다. 내부의 에너지를 모두 모아 외부와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구심점 없이 흩어지다 보니 계파문제만 부각됐다.
결국 문제는 의제설정 능력과 실행력이다. 문재인 대표가 만들어야 할 당의 선명성은 바로 그것을 성취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의제를 설정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래서 청와대와 여당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정당이 돼야 한다. 독선적인 권력이 불편해져야 국민이 편안해진다.
문 대표를 생각하면, 늘 꽉 다문 입이 떠오른다. 결연한 의지와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무언가를 늘 참고 견디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입안 빼곡한 그의 의치(義齒)들이 그 이미지를 집약한다. 야당 대표로서 문재인은 이제 그만 참고 견뎌야 한다. 2015년의 한국은 자살률 최고, 취업률 최저, 알바가 직업이 된 청춘들이 1% 기득권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신세이다. 중세의 귀족과 노예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13월의 세금폭탄에서 보듯이, 그 1%를 위해 99%를 희생시키고 있다. 지금 한국의 청장년들이 마음을 기대고 미래를 희망할 곳이 없다. 치아가 부서질 만큼 어금니를 꽉 다물고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는 국민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패배는 쓰라리다. 2012년 대선은 국정원 등 국가 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불공정한 선거였음이 밝혀졌다. 문재인 대표는 더욱 쓰라릴 것이다. 그런 쓰라림을 대다수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운명에 순응하는 숙명론자는 결정적 순간에 수동적으로 보이기에, 국민들이 같이 마음 아파해줄 수는 있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지는 못한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숙명론자의 수동성부터 떨쳐 버려야 한다. 포용과 관용을 말하기에 아직 문대표의 힘은 부족하다. 힘없는 자의 포용과 관용은 굴복과 굴종으로 비치기도 한다. 반대파의 비난을 두려워 말고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내 편을 적극적으로 넓혀야 한다.
권력의 본질은 단순하다. 지지 기반이 넓어질수록 정치인의 힘은 커진다. 문재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갖지 못한 세력을 아쉬워 말고 당신 등뒤에 함께 서있는 지지자들을 믿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신이 독해져야 국민이 순해진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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