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IBM)의 출현을 환영한다.”
기업용 메인프레임 시장에 집중하던 IBM이 1980년대 PC시장에 진입하자,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신문에 호기롭게 낸 광고문안이다. 잡스의 이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IBM에 PC시장을 완전히 내준다. 애플이 컴퓨터 부품부터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폐쇄적인 자체 개발로 일관하는 사이, IBM은 기술과 규격을 완전히 개방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여러 회사와 협력하는 거대한 협업 생태계를 구축해 PC시장을 선도한 것이다. 개방과 소통, 협력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시장을 리드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 사례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2015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선 가전제품, 의료기기, 자동차 등 일상생활의 모든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생태계 구축이 주요 화두였다. 각 분야 1등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최신 동향을 파악하는 동시에 업종을 뛰어넘어 협업을 추진할 우군을 찾았고, 하나같이 소통과 협력, 연결을 강조했다. 모든 디바이스가 서로 연결돼 쌍방 정보교환이 이뤄질 사물인터넷 기술에서 한 기업이 모든 분야를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배타적 독점권을 행사하는 분야인 특허에서도 소통과 협력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자동차에서 각각 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와 도요타는 오픈특허(Open Patent)를 선언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도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에 맞춰 자동차 관련 1,000건의 특허를 무료로 일반에 공개해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회사가 보유한 특허기술을 외부에 공개하고 더 많은 기업들이 사용하게 해 기술의 시장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친환경차 생태계를 키우려면 경쟁사와도 손잡고, 협력사를 키워야 한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의 특허청도 특허심사의 효율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발명자나 민간 전문가는 물론 외국 특허청과도 소통, 협력하고 있다. 새 기술과 발명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주요국 특허청은 심사처리기간 단축과 심사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심사에 참여시키고 외국 특허청과 심사정보공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허청도 올해부터 이런 추세에 부응해 기존 공급자 중심의 일방향 심사서비스에서 벗어나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특허심사 3.0’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모든 심사 과정에서 고객과 소통하고 협력해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품질 높은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심사를 착수하기 전에 특허 출원인과 면담해 심사방향을 상담해주는 예비심사를 확대하고, 보정방향을 제시해주는 예비검토 제도도 도입한다. 기술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열린 심사’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산업분야별 협력채널을 구축해 기술동향을 공유하고, 산업분야별 전문가 풀을 구성해 적극적인 열린 심사 참여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특허청(USPTO)을 시작으로 외국 특허청의 심사관과 선행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국제협력형 심사’도 추진해 심사품질을 높이고, 국제적으로 일관된 심사결과를 우리 기업들이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특허청과 선행기술조사 전문기관 조사원이 직접 만나 심사 의견을 교환하는 심사협력형 선행기술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허는 개인에게 아이디어 실현의 수단이고, 스타트업 기업에겐 경쟁사와 차별화된 기술로 시장 진입을 담보하는 기초자산이며, 글로벌 기업에게는 시장 공략을 위한 무기이자 방패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결과물인 특허의 권리범위를 잘 설계하고, 사업화로 연결되면서 분쟁에도 강한 특허를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특허청도 심사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열린 심사를 적극 추진해 우리 기업들의 소중한 아이디어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김영민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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