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구제금융과 관련해 기존 입장을 일부 철회한 타협안을 마련해 그리스와 유럽연합(EU) 채권단 간의 충돌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1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리스 집권당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이달 28일 끝날 예정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연장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마지막 구제금융 분할지원금 72억유로(약 8조9,000억원)를 받을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부터 새로운 협상을 체결하는 시한을 당초 5월말까지에서 8월말까지 늦추기로 했다. 이 기간 유동성을 지원 받는 일명 ‘가교 프로그램’의 운용 시한도 8월말까지로 연장하게 됐다.
그리스는 또 전 정부와 트로이카가 합의한 구제금융 이행조건의 70%는 유지하고 나머지 3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함께 마련할 10대 개혁으로 대체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그리스는 채권단과 합의한 올해 기초재정수지 흑자 목표인 국내총생산(GDP)의 3%를 반으로 깎아 1.49%로 제안했다. 긴축으로 재정흑자를 늘리는 대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지난 8일 의회 연설에서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 등 ‘인도적 위기’ 완화에 투입할 재정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시리자가 집권한 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고 대안으로 가교 프로그램을 제시했다가 EU 등 채권단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EU, 유럽중앙은행(ECB)으로 구성된 ‘트로이카’ 채권단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중 EU 프로그램이 28일 끝날 예정이라 트로이카는 6개월 연장을 요구했었고 그리스는 이를 거부해왔다.
그리스는 이번 타협안을 11일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긴급회의와 12일 EU 정상회의에 제시할 예정이다. EU 등이 타협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불확실하나 강경기조를 유지하던 그리스가 한발 물러선 안을 내놓아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일명 ‘그렉시트’(Grexit) 우려는 완화될 조짐이다.
그리스의 타협안은 시리자 정권 출범의 핵심이었던 신자유주의식 처방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의 감독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9일 “그리스 정부는 치프라스 총리 제안을 무조건 수용할 정도로 유럽 전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을 거라 여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고,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도 그리스가 가교 프로그램을 원한다면 국제사회가 감독하는 개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U와 주요국의 반발이 타협안을 이끌어낸 셈이다.
그리스가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협상 타결까지 변수는 아직 많다. 시리자가 완고한 ‘긴축 철폐’ 공약에서 후퇴했다고 하나 OECD와 마련할 30%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EU 등 채권단의 평가가 달라질 전망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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