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낸 시ㆍ산문ㆍ좌담 자료도 수록
누락된 북한 문학사 복원 의미있어
‘북방의 시인’ 이용악(1914~1971) 전집이 출간됐다. 곽효환, 이경수, 이현승 등 중견 이용악 연구자 3인이 이용악 탄생 100주년(2014년)을 기념해 2년 간 작업한 결과물로, 시인이 남쪽에서 발표한 시뿐 아니라 월북 후 낸 시 전편, 북에서 발표한 유일한 산문집 ‘보람찬 청춘’과 좌담회 자료까지 이용악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른 것이 특징이다.
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다. 극심한 가난 속에 성장한 그는 1935년 시인문학 3월호에 ‘패배자의 소원’으로 등단한 뒤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을 발표했다. 일제 식민치하의 비참한 삶과 간도 유이민들의 슬픔을 시로 승화한 이용악은 1930년대 후반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인으로 불렸다. 해방 후 좌파 문인단체 조선문학가동맹의 회원으로 활동한 시인은 한국전쟁 중 월북했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이용악의 시 세계는 여기까지다. 1988년 월북문인 해금 후 윤영천 인하대 교수가 펴낸 ‘이용악 시전집’에는 월북 전 그가 낸 네 권의 시집만이 담겼으며 그마저도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이번 전집의 저자들은 “같은 월북 문인인 백석의 시 연구가 북에서의 시적 여정까지 포괄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데 반해, 이용악의 시는 월북 전에 국한돼 기존 전집으로는 확대된 연구 지평을 감당할 수 없다”는 발간 의의를 밝혔다.
전집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연구자들을 위해 이용악의 모든 시를 발표 순서대로 원문 그대로 실었고 2부에는 독자들을 위해 같은 시를 현대어로 풀어 썼다. 시집에 미수록된 시는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로 나누어 실었다. 3부에는 산문과 좌담 및 설문 자료를 발표 순으로 배열했다.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이 월북 이후 발표한 이른바 북한시들이다. 해방 이전 민중의 고달픈 삶을 서정적 시어로 품었던 시인은 해방 이후 미국에 대한 증오와 좌편향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는데, 월북 이후 쓴 작품에는 이 같은 방향성이 더욱 고착화하는 한편 체제선전적인 경향을 강하게 띤 것을 볼 수 있다.
“어질고 근면한 이 사람들 앞에 / 약속된 풍년을 무엇이 막으랴 / 쌀은 사회주의라고 굵직하게 써 붙인 / 붉은 글자들에 모든 시선이 즐겁게 쏠리고 // 허연 구레나룻을 쓰다듬다가 / 무릎을 탁 치며 껄껄 웃던 칠보 영감/ ‘산 없는 벌판에 쌀산이 생기겠군’”[‘덕치마을에서(1)’ 일부?리용악 시선집(1957)]
이용악의 작품 세계가 변화한 계기는, 그가 월북 후 북한 시단에서 주류로 활동한 보기 드문 시인이라는 점과 1953년 당의 숙청을 받아 6개월 간 집필 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에서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 중 한 명인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이자 시인은 1955년에 발표된 이용악의 유일한 산문집 ‘보람찬 청춘’이 시인의 부활에 한 몫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번 전집에서 최초로 전문이 공개된 ‘보람찬 청춘’은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된 아이가 영웅적 노력을 통해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로, 산문이지만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곽 시인은 “1950년대 북한에서 유행한 오체르크(실화 문학)의 일종”이라며 “2만부를 인쇄했다는 데서 판매용이 아닌 체제선전용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시인이 주류 문단에 복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밖에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용악 생애 연보와 작품 연보, 연구 서지 등도 알차다. 저자들은 “이용악은 일제에 의해 절멸한 현실주의와 서정성을 한데 아우른 시적 성취로서 돌올한 시인”이라며 “이번 전집은 시인의 재북 시기까지 포괄함으로써 시인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북한의 누락된 문학사를 복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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