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정치 관련 댓글과 트위터 활동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불법 정치개입이자 선거개입 행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어제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앞서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정치개입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피고인과 검찰 양측의 상고 여부에 따라 최종심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정통성에 흠집이 불가피하게 됐고, 향후 정국에도 적잖은 파문이 일 전망이다.
대선개입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는 국정원 관련 트위터 계정의 활동내역 분석이었다. 1심 재판부는 트위터 계정 175개와 트윗ㆍ리트윗 글 11만여 건을 증거로 채택하고도 그 내용의 선거운동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은 채 “원 전 원장이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716개 계정의 트윗ㆍ리트윗 글 27만3,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2012년 7월 이후 ‘정치관여’ 글보다 ‘선거개입’ 글이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으며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8월 20일 이후 트윗 글이 급증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이후 트윗 활동에서 정치일정과 연동된 내용이 확인된 만큼 8월 20일 이후 심리전단의 활동은 선거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심리전단 활동과 관련한 일사분란한 지휘체계와 원장 보고체계 등으로 근거로 이를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헌법이 요구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외면한 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개입해 이를 왜곡하고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했다”고 지적하며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정치개입만으로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판단하고도 원 전 원장의 국정원장의 임무를 몰랐을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과 대조된다.
최종심까지 지켜봐야겠지만 판결문을 비교해 보면 주요 쟁점에 대한 아예 판단을 유보한 1심보다 꼼꼼한 증거 분석을 통해 선거개입 유죄 판단을 끌어낸 항소심의 판결이 법리와 상식에 부합한다. 이에 비춰보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새누리당의 반응은 미흡하다. 재판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겨왔던 국정원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와대도 “전 정권의 일”이라는 식으로 피해갈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검찰 수뇌부의 석연찮은 행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채동욱 전 총장이 황교안 법무장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가 난데없는 혼외자 논란에 휘말려 퇴진한 뒤 사건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항소심 판결로 대북심리전을 빙자한 국정원 활동의 불법성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좌익효수’를 비롯해 국정원 직원이 연루된 사건들을 하루속히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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